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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이야기 ❶ - 공무원 시험 준비생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9-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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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은 끝났지만 시작은 지금부터


지난 8월 18일, 2018년도 국가직 7급 공무원 시험이 끝났다. 원주의 한 카페에서 시험을 마친 수험생 배주현(가명, 28) 씨를 만났다. 배 씨는 국가직 7급 일반행정에 응시했다. “2년 정도 공부했어요. 1년 차에는 9급만 준비하다가 2년 차부터 9급이랑 7급을 같이 공부했어요. 일반행정 7급 준비 과목은 국어, 한국사, 헌법, 행정학, 행정법, 경제학이에요. 영어는 토익 점수로 대체하구요.” 한꺼번에 9급과 7급을 병행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공무원 시험을 늦게 시작한 만큼 조금 더 빠르게 진급하고 싶기 때문이에요.”


‘공시생’으로 살아가기

여느 또래와 다름없는 평범한 대학 생활을 했다. “자격증도 여러 개 따고 봉사활동도 다녀왔어요. 동아리 하면서 학생회 활동도 하고요.” 취업 준비도 ‘남들만큼’ 했다. “공무원이 되고 싶은 이유요? 안정적이고 비교적 높은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배 씨는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큰 공직 가치나 사명감은 사실 없어요. 다만 공직자의 윤리 규범은 지키면서 맡은 임무를 성실히 이행하는 공무원이 되고 싶어요.” 수험생 시절 일과가 궁금했다. “7시에 일어나서 7시 30분부터 저녁 10시까지 공부했어요. 시험이 코앞이면 새벽 1시에 잠들기도 했어요.” 지금은 해방감 속에서 여유롭게 지내고 있다. “시험 준비하면서 늘 외로웠어요. 정말 쉽게 얻을 수 있는 건 없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매일 자기 자신을 절제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합격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심해질 때도 힘들었어요. 그러다가 이런 것들을 이겨내고 공부하는 사람들은 나중에 뭐든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 자신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수험 생활 중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ASMR(백색소음 또는 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 자율 감각 쾌감 작용을 뜻하는 신조어)을 자주 들었다. 배 씨는 요즘 보고 싶은 드라마와 영화, 책을 원 없이 보고 있다. “수험생이 되면 소소한 일상을 누리는 것조차도 죄책감이 들어요. 시험이 끝난 지금은 결과는 둘째 치고 죄책감 같은 감정이 들지 않으니깐 행복해요.” 최근 <신과 함께 2>를 재밌게 봤다. “한참 재밌게 보는데 ‘나태 지옥’이 나오더라고요. 무위도식하며 태만하게 산 망자들을 심판하는 곳인데… 요새 시험 끝나고 확실히 이전보다 나태해지긴 했어요. 순간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요. 이건 죄책감과는 또 다른 감정같아요.”

 


꿈꾸는 미래

 


배 씨는 한참 생각했다. “요즘 어떤 꿈을 꾸며 살아가느냐… 사실 시험에만 몰두하다 보니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다만 공직자가 되면 일은 일대로 책임감 있게 하고 내가 원하는 취미 생활도 계속 이어가고 싶어요.” 취미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눈이 반짝인다. “피아노 연주랑 아직 미숙하지만 정물화 그리기도 좋아해요. 원래 활동적인 걸 좋아해서 암벽도 탔는데… 생각난 김에 다시 활동적인 취미를 하나 만들고 싶네요. 예를 들어 맥주병 탈출을 위한 수영…? 얼른 국민체육센터에 가봐야겠어요.(웃음)”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배 씨는 처음보다 표정이 많이 밝아졌다. “아무래도 혼자 있는 시간이 길잖아요. 어느 순간 공부에 지치면 잡생각이 많이 나요. 물론 금방 다잡기는 하지만 한번 그렇게 생각이 이어지면 자존감도 내려가고, 힘들어요. 그런데 이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옛날 얘기를 하니깐 과거의 제가 꽤 열심히 산 것 같아서 조금 신기해요.” 배 씨는 얼마 전에 가족과 한라산 등반을 다녀왔다. “폭염도 폭염이지만 시험 디데이가 임박했을 때였어요. 어려서부터 부모님과 함께 여기저기 여행을 많이 했는데 제가 시험을 준비하면서 기회가 줄었어요. 이번에 아빠가 제게 그러시더라고요. ‘가족이랑 보내는 시간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보니 지금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영원한 건 아니잖아요. 그래서 다녀왔어요. 정말 좋은 시간이긴 했는데 폭염 속 등산은…(웃음)” 어려서부터 가족과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했다. 공무원 말고 충분히 다른 직업을 생각 했을 법도 했다. “여행하는 유투버? 요즘 유투브가 흥하잖아요. 여행도 자주 다녔고 여전히 여행을 좋아하니 그걸로 영상을 만들어 올려 다른 사람들과 여행의 즐거움을 공유하고 싶어요.”


지난 몇 년 간 집과 독서실을 오고 간 배 씨의 삶은 치열했고 뜨거웠다. 매일 자신을 절제했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공부하다가 너무 지치면 S.E.S.가 부른 ‘달리기’를 많이 들었어요. 끝난 다음에는 오랫동안 쉴 수 있다는 노랫말을 들으며 마음을 다잡았어요.” 정말 시험이 끝났고 휴식이 찾아왔다. “당분간은 조금 더 쉴 생각이에요. 그러고 나서 ‘다음’을 준비하려고요. 곧 또 다른 시작이 펼쳐지겠죠?”





글 이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