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9-03-11 |
---|---|---|---|
첨부파일 | [포맷변환]155226868033561d5a32c1bfe9c1b1fb41d449cf51.jpg | 조회수 | 3,710 |
꽃이야기에서 마을의 미래를 읽다 ![]() 봉산동 철다리 인근, 성당의 바로 맞은편에 카페가 하나 있다. 예전 봉산파출소 건물로 쓰이다 몇 년 전 공매되어 카페로 변신한 곳이다. 오래된 주택가를 뒤로하고 정사각형 모양으로 똑 떨어지는 깨끔한 하얀 건물, 나무 테라스가 한가롭고 작은 마당엔 풀꽃이 피어 아늑한 이곳의 이름은 ‘봉산동, 꽃이야기’(이하 꽃이야기)다. 꽃이야기는 스물일곱 동갑내기 신은민·윤솔아 씨 두 명이 함께 운영하는 가게다. 플라워카페로 꽃과 음료를 함께 취급한다. “막연하게 카페를 하고 싶다고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솔아가 커피를 배우고 제가 꽃을 배우게 돼 시작하게 됐어요.” 한창 꽃 손질을 하고 있던 신은민 씨가 말했다. 고등학교 동창생인 이들은 오전엔 교대로 출근해 가게 문을 열고 오후에 항상 함께 근무한다. 오늘은 일이 있어 신 씨 혼자 가게를 보고 있다. 지난 2016년 11월 문을 열었으니 이제 1년 반이 지난 참이다. 두 명이 함께하다 보니 싸울 법도 하건만, 신 씨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단다. “성향이 워낙 잘 맞아요. 가게 문을 열고 지금까지 휴가를 두 번 다녀왔는데, 둘 다 같이 갔었어요. 일본, 오키나와로요. 손님들이 가게에서 맨날 붙어있으면서 휴가도 같이 다녀오느냐고 그러시더라고요.” 낡았지만 따뜻한 동네 어귀에서 1층에 들어서면 꽃과 꽃으로 만든 소품들이 가득 손님을 반긴다. 한쪽 편에 자리 잡은 카운터에서 음료를 주문하고 2층으로 올라서니 차분하고 따뜻한 인테리어가 한눈에 들어온다. 하얗고 하늘하늘한 커튼 사이로 햇살이 드리워지고, 나란히 벽에 걸린 드라이플라워나 테이블마다 놓인 색색의 꽃병이 참 곱다. “둘이 커튼도 동대문에서 해 오고, 테이블이나 선반도 같이 구입해 직접 설치한 거예요. 쿠션도 패브릭 공방에서 배우며 같이 만든 거고요.” 오랜 친구 사이, 취향도 성격도 비슷한 덕분에 가게 역시 주인을 꼭 닮았다. “둘 다 고요하고 잔잔한 걸 좋아해요. 손으로 뭔가 만드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요.” 꽃이야기가 봉산동 철길 앞에 자리를 잡게 된 것도 이들의 이런 취향 덕분이다. 꽃과 커피가 함께 있다 보니 개발된 도심지역보다는 조용하고 쉴 수 있는 곳을 선호했다고 한다. “둘 다 단계동에 살거든요. 처음엔 단계동 쪽에서 자리를 알아봤는데, 그곳은 상상했던 분위기와 안 어울리더라고요. 다 세련되고, 새 건물에, 1층엔 카페고 위로는 집이 있는 그런 느낌이라서요.” 그러다 우연히 봉산동에 들르게 됐고, 여기에 반하게 되었단다. “동네도 한가롭고 저희 이미지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새로 개발된 세련된 분위기보다도, 오래되었더라도 우리가 원하는 대로 꾸밀 수 있고, 획일적이지 않으니까요.” 바깥 입간판에 크레파스 질감처럼 투박하게 그려진 두 사람의 모습도 꽃이야기의 따뜻하고 분위기를 잘 드러낸다. 동네의 이야기를 하나둘씩 알아가며 사실 신 씨는 꽃이야기를 열기 전엔 봉산동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었다. “집이나 학교 근처, 다니던 데만 다니니 봉산동에는 와본 적도 없었고, 아무것도 몰랐어요.” 심지어 이 건물이 옛날 파출소로 사용되었다는 사실도 뒤늦게 알게 되었단다. 카페에 방문하는 손님들 덕분이다. 오가다 일부러 들르는 손님도 많지만 인근 아파트나 뒤쪽에 형성된 오래 된 주택가의 주민들도 꽃이야기를 많이 찾곤 한다. “예전에 파출소에서 근무하셨던 분들도 가끔 오시고요. 근처에 원주초등학교가 있다 보니, 다른 지역에 사시는 어르신들이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와서 동창이나 친구분들을 만났다가 ‘파출소였는데 카페가 됐다’면서 오시기도 해요.” 카페 한 쪽, 손님들을 위해 화관(花冠) 따위의 소품을 마련해둔 곳에 무위당 선생에 대한 책이 몇 권 놓여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가게에 찾아와서 무위당 선생님 생가가 어디냐고 묻는 분들이 많았어요. 와서 사진 찍고 가시는 분들도 많고요. 부끄럽지만 솔직히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거든요. 물어보는 분들이 있으니 알고 있어야겠다 싶어서 준비를 해 둔 거예요.” 꽃이야기의 오른편에 위치한 길의 이름은 바로 ‘무위당길’, 무위당 선생의 생가가 위치해있기 때문이다. 신 씨는 확실히 알아두었다며, 꽃이야기에서 조금만 걸어 들어가 골목 끝 갈림길 왼편이 바로 선생의 생가라고 덧붙였다. 꽃이야기는 협동조합 탐방 등으로 원주를 방문한 단체 방문객들이 무위당 선생의 생가를 방문하기 위해 봉산동에 들르면 빠지지 않고 거치는 장소다. 옛 봉산파출소 무위당 선생과 선생을 찾은 운동가들을 감시하기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동네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던 청년이 가게를 열면서 하나둘씩 지역을 이해하기 시작하고 있다는 사실은 즐겁고도 멋진 일이다. “동네가 오래됐지만 진짜 예쁘거든요. 가끔 둘이 있다가 손님이 없으면 한 명이 ‘산책 갔다 올게’하고 원주천변이나 우물시장길에 다녀와요. 예전에 우물이 있어서 우물시장길이었대요. 지금은 벽화가 칠해진 곳도 있고요.” 말할 것 없이, 원래 이곳에 우물시장이 있었다는 사실도 가게를 운영하면서 알게 된 내용이다. 청년이 꿈꾸는 오래된 내일 꽃이야기가 접하고 있는 봉산로는 봉산동의 중앙을 가로지르는 오래된 길로, 인근의 상점들도 문을 닫았거나 오래되고 낙후된 경우가 많다. 특히 봉산로와 원주천 사이에는 아직 두 자릿수 국번으로 된 전화번호가 그대로 남아 있는 간판들이 아직 많을 정도다. “요즘 유행하는 경리단길 같은 곳처럼 옛날 건물이나 주택을 개조해서 젊은 사람들이 많잖아요. 저희도 주변에 그런 곳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는데, 지금은 아무도 없죠.” 그러다 보니 외롭다는 생각도 든단다. “미로예술시장 같은 곳은 청년들도 많이 입주해 있고 이런저런 지원도 많은데, 여기는 지원도 없고 애초에 또래가 별로 없어요. ” 고민을 공유하고 나눌 수 있는 동료의 존재는 늘 아쉽다. 그래서 미로예술시장에서 청년 상인들이 주기적으로 행사를 개최하거나 밤늦게까지 가게 문을 여는 모습을 보면 부럽기만 하다. 신 씨가 꿈꾸는 꽃이야기의 모습은 생각보다 소박하다. “저희처럼 생각하는 분들이 많이 오셔서 이곳에서 재밌는 활동을 많이 했으면 좋겠어요. 같이 플리마켓도 열고, 마당이 있으니까 주변 사람들하고 파티 열고, 고기도 구워 먹고, 재밌게 지내는 거요.” 신 씨는 지금이 너무 심심해서 가까운 곳에 동종 업장이 생기면 그저 좋을 것 같단다.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꿈꾸는 청년들에게 경쟁은 이세계의 이야기나 마찬가지다. 지역이 어떻게 나아갔으면 하는가에 대한 신 씨의 생각은 도시재생이 지향하는 바와 잘 닿아 있다. “동네가 개발되면 좋죠. 그런데 그게 흔히 말하는 ‘재개발’이 아니라, 아기자기하게 좋아졌으면 좋겠어요.” 애초에 꽃이야기가 이곳에 문을 연 것은 입지가 좋거나 동네가 세련되어서가 아니었고, 손님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도 거창하고 화려해서가 아니다. 봉산동, 오래된 동네만이 가질 수 있는 소박한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아, 가게를 연다고 했을 때 부모님께서 외진 곳에서 여자 둘이 밤늦게까지 일한다고 걱정하셨거든요. 아무래도 사람이 많아지면 그런 면도 좋아지겠죠?” 신 씨가 생각하는 나아진 동네의 모습이다. 동네 사람들이 모여 마켓을 열고 파티를 즐기는 것, 거리가 밝아지고 활력이 돌아 안전해지는 것. 이 풍경을 ‘상권활성화’라는 단순한 단어로 표현하는 건 어쩌면 지나치게 조악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개인의 미래, 마을의 미래 사실 이들은 전공과 전혀 관계없는 일을 하고 있는 중이다. 둘 다 대학에서 배운 것은 사회복지학. “직장을 다니면서 일주일에 한두 번 전라도 전주로 꽃을 배우러 다녔어요. 그런데 그게 하나도 안 힘들고 너무 좋은 거예요. 처음으로 피곤하지 않다는 걸 느꼈고, 제가 꽃을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됐죠.” 어린 시절부터 신 씨는 생일선물로 집 앞 꽃집에서 꽃을 샀고, 입학식이나 졸업식 같은 특별한 날이면 부모님으로부터 어떤 꽃을 받고 싶은지 질문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꽃을 좋아한 신 씨는 사람들을 위해 꽃을 다듬고, 주특기가 차(茶)라는 윤 씨는 음료를 만들고 있단다. 그래서인지 꽃이야기 메뉴판은 다른 카페와 조금 다르다. 직접 그림을 그리고 적어내린 메뉴판도 사랑스럽고, 호우지(구운 녹차)라떼·얼그레이초코·퐁쉐이크(과자를 넣은 곡물셰이크) 등 특이한 음료에도 시선이 간다. 잎차의 종류도 다양하고 향이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일본 갔을 때 좋았던 게 카페들이었어요. 다 똑같지 않더라고요. 우리나라는 어딜 가나 이 메뉴는 다 있어야 하고, 비슷비슷하잖아요. 거긴 각자 가게 분위기도 다르고, 메뉴도 다르고요. 카페를 한다면 그런 모습이었으면 좋겠다고 상상했죠.” 오래된 동네 어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와 자신들 고유의 공간을 꾸며가는 젊은 청년들. 어쩌면 이들이 꿈꾸는 미래가 마을의 미래가 아닐까. 꽃이야기에서 도시재생 이후의 봉산동을 그려본다. 글 이새보미야 사진 원춘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