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夜;톡에서 만난 동네 - 도시공감협동조합건축사사무소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9-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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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건축가가 살고 있었네




그곳에서 정겨움을 느꼈던 것은 그 마을의 지나간 흔적이 옛 기억을 떠올려 주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오밀조밀 낮은 기와 주택들 사이로 펼쳐진 좁은 골목에서도, 전화번호 국번호가 2자리로 시작하는 오래되고 낡은 간판에서도, 힘겹게 올라야 하는 언덕 위 맨 끝집을 보았을 때도, 고무줄놀이를 하거나, 술래잡기, 구슬치기, 딱지치기 등 어린 시절 놀이가 꿈틀꿈틀 머리에서 가슴으로 이어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들은 그렇게 그곳 후암동에서 공유를 통한 공감을 꿈꿨다.

지난 7월16일. 늦은 저녁이 되어서도 누그러지지 않는 폭염을 뚫고 그림책여행센터 이담으로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이날 이곳에서는아주 특별한 시민강좌가 열리기 때문이었다.

<2018 원주ESD 시민강좌 夜;톡talk> 두 번째 시간. 이날의 주제는 ‘후암동, 공유를 통한 공감을 꿈꾸다’로 야톡의 주제인 ‘공간×공감’과 아주 잘 어울렸다. 서울 후암동에 둥지를 틀고 사는 ‘도시공감협동조합 건축사사무소’의 이준형 실장이 이날 야톡의 주인공으로 시민들과 만났다. 그는 아직 34살의 청년이었다.​



이 실장은 건축사 5명이 모여 2014년 11월 도시공감협동조합 건축사사무소를 설립했다. 빈손으로 창업한 그들은 사무소를 얻을 여유가 없었지만 일을 시작했다. 때로는 대학 연구실에서, 어느 날은 집에서 일을 하며 1년 6개월 동안 도시공감을 운영해 나갔다. 일을 시작했지만 그들만의 공간, 혹은 마을이 필요했다. 도시공감은 건축을 기반으로 지역재생을 하는 회사인데 ‘우리동네’가 없다는 것이 늘 마음에 걸렸던 것. 어느 한 곳에 자리를 잡고 마을에서 일을 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서울의 곳곳을 답사했고 마지막 발길은 후암동으로 향했다. 두텁바위가 있어 후암이라 불리는 마을, 서울역에서 가깝고 남산 아래 자리한 마을이다. 후암동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많이 거주하던 지역으로 여전히 적산가옥과 문화주택 등 오래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동네다. 아주 마음에 들었고 도시공감의 후암동 시대가 찾아왔다.
도시공감이 후암동에 자리를 잡게 된 계기는 정말 우연이었다. 충신동, 삼선동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지인의 페이스북을 통해 우연히 알게 된 후암동. 어떤 매력이었는지 명확하게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팀원들과 동네를 한 바퀴 돌고는 푹 빠져들었다. 후암동에 자리를 잡기로 하고, 부동산을 찾아다니며 만난 곳은 오토바이를 보관하는 창고로 쓰였던, 보물같은 지금의 사무소 공간이다. 실거주가 아닌 오토바이를 보관하는 용도로 쓰였기 때문에 모든 창은 샌드위치 패널로 막고, 집 전면에도 철판을 대고 셔터가 설치돼 있다. 당연히 화장실도 싱크대도 없는 상태. 면적대비 주변 시세에 비해 임대료가 저렴해 수리비용이 드는 것을 감안하고 빌리기로 결정했다. 우여곡절 끝에 철거가 시작되고 설비와 전기, 목공사가 진행됐다. 드디어 어여쁜 공간이 탄생했다. 한걸음에 달려와 내 일처럼 거들어 준 사람 모두를 초청했다.

후암주방 공유주방의 탄생

큰 아파트 단지에는 커뮤니티시설이라고 하는 다양한 부대복리시설들이 있다. 그렇지만 일반 저층주거지에서는 그런 것들을 찾아볼 수 없다. 부담 없이 동네에서 이용할 수 있는 여러 방이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예를 들면 주방, 다방, 책방, 빨래방, 공부방 등등.

그렇게 시작된 것이 바로 공유주방인 후암주방이다. 궁극적으로는 저런 다양한 방들을 멤버십 개념으로 이용할 수 있는 집합주거 또는 공유주거를 만드는 것이 목표 혹은 꿈이다.

처음에는 동네에서 사용하지 않는 유휴공간을 이용하고 싶었다. 오랫동안 비어있는 창고나 상가 또는 비어있는 집으로 말이다. 그래서 또 다시 골목골목을 누비며 찾으러 다녀야 했다. 막상 유휴공간을 찾는다는 게 녹록지 않았다. 간혹 발견하더라도 당장의 활용에 적합지 않거나 풀어야 할 복잡한 문제들이 많았다. 그렇게 고전하고 있던 와중에 지금의 후암주방 자리인 수선집을 찾았다. 3평 남짓한 작은 공간이었다. 가로×세로가 2.1m×5.4m 밖에 되지 않는 작은 면적이다. 2인 테이블 상부는 심플한 블랙의 라인 조명으로 마감했다. 굳이 밥을 먹지 않아도 앉아서 노트북을 하거나 책을 볼 수 있는 2인 테이블로 구상했다. 싱크대 및 아일랜드 상판은 인터넷으로 목재를 주문했다. 아일랜드 식탁 일부는 접이식으로 100kg까지 버틴다는 말을 믿고 구입했다.

후암주방 인근에 작은 재래시장이 있어 식재료를 구입하는데도 큰 도움이 된다.

고시원의 비좁은 방에 연인을 초대해 맛있는 한끼를 해주고 싶어도 못해주었던 젊은 청춘들에게 요즘 인기다.​


후암동 집과 사람의 이야기를 기록하다.

후암가록과 후암서재


이들은 후암동에 자리를 잡으면서 하고 싶은 일이 하나 있었다. 일부러 오래된 마을을 찾아 다녔기 때문에 그 마을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싶었던 것. 특히, 건축가로서 오래된 집과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공유하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이름 하여 ‘후암가록’이다. 사실 집을 기록하는 일을 하면 좋겠다 라고 막연히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이를 행동으로 옮기게 한 계기가 있다. 서울시협동조합지원센터와 다음카카오에서 함께 진행한 공모사업에 선정된 것이다.

이후 시작된 후암서재는 누구나 자신의 서재를 가지고 싶어한다는 것에 착안했다. 그렇게 후암서재 프로젝트가 시작됐고 이제는 꽤나 잘 나가는 공유서재로 자리 잡았다. 후암주방과 달리 후암서재의 재이용 비율은 주민들이 더 많다는 것이다​.



인문도시 지원사업 2018 원주 ESD 시민강좌 ;톡talk은 원주시를 지속가능한 도시로 전환하기 위해 환경 · 사회 · 경제 등 다양한 분야를 시민들과 함께 이야기 나누는 프로그램으로, 연세대학교 인문도시 원주사업단·원주지속가능발전협의회가 주최하고 원주영상미디어센터, 지역문화기획단체(P-OLA), 그림책여행센터 이담, 원주청년생활연구회가 주관한다.




글 원상호 · 도시공감협동조합 건축사사무소 사진 도시공감협동조합건축사사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