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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이야기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9-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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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이야기

원주 농부 조병현 씨 이야기



귀농 11년차, 농사에 눈을 뜨다
친환경 농업으로 유명한 광격리 영산마을. 나지막한 둔덕에 농부 조병현 씨의 양파밭도 드넓게 펼쳐져 있다.
조병현 씨는 원래 이곳 사람이 아니다. 원주 시내에서 유치원과 학원을 운영하다 17년 전 호저에 들어오게 됐고, 지난 2008년 사업을 접으며 아예 귀농을 했다. “농사는 전혀 지어본 적이 없었어. 처음 와서 고생을 엄청 했지.”
처음엔 이렇게까지 농사를 지을 생각은 아니었다. 아내 최병옥 씨는 공기 좋은 전원에서의 생활을 꿈꾸며 귀촌을 했다고 말한다. 그래서 처음엔 집 앞 1,400평의 땅에 ‘먹을 수 있는 건 죄다’ 심기도 했다. “그건 농사에 눈 뜨면서 다 캐다 버렸죠. 처음엔 정말 못하겠더라고요. 고구마 한 골 심고 드러눕고 그랬어요. 10년이 넘으며 노하우가 좀 생겨 이제는 괜찮아요.”
재배하는 작물을 몇 가지로 줄여 집중도를 높였고, 생협·로컬푸드·급식 등 생산량의 95% 정도를 계약 재배하며 판로도 확보됐다. 다사다난한 적응기를 겪고 지금은 안정기에 접어든 셈이다.
광격리에 처음 들어올 때 어렸던 자식들은 어느덧 장성해 결혼을 하며 도시로 분가를 했다. “둘 다 아들이에요. 딸이 있어야 되는데 딸이 없어요. 그래서 손녀딸이 태어나니까 정말 좋더라고요.”
덕분에 조 씨 내외는 오붓하게 둘이 지낸다. 일손이 많이 필요할 때에는 사람을 사서 농사를 짓는다. 조 씨는 이제 자리도 제법 잡아 놨으니 자식들이 들어오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아내 최 씨는 생때 같은 아들들이 힘들게 지내는 게 싫어 손사래를 친다. “젊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도 많고 비전도 있어 보이는데, 집사람은 시내에서 살다 들어오면서 본인이 하도 고생을 해서 아예 말도 못 꺼내게 해.”

무농약 양파가 탄생하기까지
조 씨는 양파를 비롯해 오이, 느타리버섯, 감자 등을 주로 재배하고 있다. 주 양파밭은 2,000평 정도고, 약간 떨어진 곳에 좀 더 작은 밭이 하나 더 있다.

이번 햇양파는 지난해 초가을 육묘장에서 파종을 하고 조금 기른 후 10월 15일경 밭으로 정식(定植)했다. 밭에 옮길 때는 비닐 멀칭을 하고 구멍마다 모종을 하나하나 심는데, 품이 굉장히 많이 드는 일이라 인건비도 만만찮다. 원주농업기술센터에 양파 모종 심는 기계가 들어와 올해부터는 기계로 심을 수 있다고 하니 시간도 돈도 크게 절약될 것이다.​

수확은 6월 중·하순이다. 노지에서 꼬박 겨울을 나고 한참을 자라는 셈이다. 때문에 비교적 추운 원주의 날씨에도 잘 자랄 수 있게끔 기후에 맞는 품종을 선택하고, 겨우내 밭에 비닐을 덮어두는 등 신경쓸 일이 많다.
날이 풀리면서부터는 풀과의 싸움이다. 쭉쭉 자란 양파는 6월로 접어들며 잎이 노랗게 말라 넘어가기 시작한다. 수확을 하면 된다는 신호다. 양파를 캐 두둑 위에 얹어두고 며칠 볕에 둔다. 잎을 잘라낸 후 캐기도 하지만, 자른 부분에 균이 들어갈 수 있어 먼저 충분히 말린 후 잎을 잘라낸다. “변수는 비 소식이야. 날씨가 맑을수록 예건(예비건조)이 잘 되니까 비 안 맞는 게 제일 좋아. 어쩌다 소나기를 맞는 거면 몰라도, 비가 계속 오면 엄청 애를 먹지.”

수확기 농부의 일상
오늘은 양파를 출하하기로 한 날이다. 이미 양파를 캐내 충분히 예건을 하고 잎도 모두 잘라낸 상태. 왕·특왕 등 크기에 따라 양파를 분류하고 상자에 20kg 단위로 나누어 담아 나가면 된다.
“이거 잡숫고 해요.”

“집사님, 국수 잡숴, 국수. 빨리 와요.”

마을 사람 네댓이 일을 돕고 있어 조 씨 내외는 국수를 잔뜩 말아왔다. 일꾼들은 옹기종기 모여 아침참을 나누어 먹는다. 그중 한 명이 베트남 전통 고깔모자를 쓰고 일하고 있어 연유를 물었더니, 다른 사람들이 앞 다퉈 한 마디씩 덧붙인다.​

“월남 갔다 왔잖아.”

“아~ 참전용사라서?”

농담 한 마디에 좌중에 웃음이 터져 나온다.​

보통 아침 7시 전후부터 일을 시작하는데, 수확기에 접어들며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진 참이다. 조 씨는 보통 아침 일찍 농산물을 출하하고 돌아와 일손을 돕는 마을 사람들에게 참을 배달한 후 일을 시작한다. 작물이 담긴 상자의 무게를 정확히 달고 나르는 일이 조 씨의 몫이다. 식사 시간을 제외하면 보통 저녁 6시까지 꼬박 일을 한다. 출하량이 많거나 날씨 때문에 밤샘 작업을 하는 일도 예사다. 긴 남방셔츠를 챙겨 입고 모자도 써 보지만, 날씨도 덥고 이리저리 움직이다 보니 뙤약볕에 팔뚝이며 목덜미며 온통 까맣게 그을렸다. 더운 날씨에 비지땀이 줄줄 흐른다.

친환경 농사의 어려움
“그래도 잘 됐을 때는 힘든 줄 모르고 해요. 안 됐을 때가 문제지. 이거 봐요, 수확할 건 없고 풀만 있어. 곡식이 이렇게 크면 아주 부자가 될 거예요.”

아내 최 씨가 말한다. 올해는 양파가 흉년이란다.​

농사의 풍흉은 인력으로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지난겨울이 워낙 추웠던 데다 일교차가 너무 심해 저온이 이어졌고, 최근에는 비까지 너무 많이 내렸기 때문이다. 조 씨의 밭도 위쪽은 듬성듬성 결실이 시원찮아 수확할 때 마치 보물찾기를 하듯 양파를 캐야 했단다. “이번엔 기후가 원체 나쁘니까…. 곤자리(굼벵이)가 파먹어서 많이 죽기도 하고.”
조 씨의 양파는 무농약 양파다. 농약 대신 퇴비와 유박(유기질 비료)이 약간 들어간다. 농약을 칠 수 없기 때문에 이번처럼 병해에 대처하기가 쉽지 않다. 관행농가에서 파종부터 수확까지 농약을 13번 이상 친다. 농약을 단 한 번도 치지 않는 대신 2~3배 비싼 유기인증자재를 사용한다. 현저히 효과가 적어 관행농업 수준의 효과를 보려면 십 수 배의 비용이 든다. 관행농업의 경우 농약 덕분에 작물이 상하는 속도가 느려 수확과 출하도 더 오랫동안 할 수 있다.
친환경 농사엔 잡초와의 전쟁도 큰 문제다. 넓은 밭에 몇 번이나 김을 맸지만 돌아서면 풀이 올라온다. “뽑아도 뽑아도 끝이 없어요. 친환경만 안 하면 일이 없지. 그래도 매고 돌아서면 풀이 올라와요. 그래서 내가 희망이 없다 그랬어.” 아내 최 씨가 넌더리를 낸다.

“자재 비싸지, 김매는 품 많이 들지, 알 작지, 수확량 적지, 엄청난 손실이거든. 그런데 학교 급식에 나갈 때 관행농가는 1kg당 1,500원을 주고, 친환경은 1,650원을 줘요. 2~3배 정도 값을 더 받아야 하는데 실제로는 150원밖에 차이가 안 나는 거야. 그냥 짓는 사람들은 친환경 하는 농부들보고 바보라고 해. 계속 이러면 누가 친환경을 하겠어?”​

친환경 농산물의 가격 현실화가 시급하다고 지적하면서, 조 씨는 소비자들의 인식 변화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아래 지역에 양파 많이 짓는 곳은 몇 십 년 동안 그렇게 약을 쳐 와서, 그냥은 농사가 안 돼. 갈수록 점점 더 독한 약을 많이 쳐야 되는 거야. 우린 아무리 잘 해도 풀이 나지만 거기 가면 양파 외에는 아무것도 없어. 그런데 대부분 눈에 딱 보기에 크고 깨끗한 것을 좋아하고, 조금이라도 흠이 있거나 벌레라도 붙어 있으면 바로 항의를 하니까.”
애로사항을 줄줄 말하면서도 조 씨는 농사를 처음 시작한 때부터 지금까지 친환경 농업을 고집하는 중이다. ‘나도 먹고 식구들도 먹기’ 때문이다. “친환경 찾는 사람은 꼭 친환경만 찾아요. 훨씬 맛도 좋대요.” 아내 최 씨의 말에 조 씨도 고개를 끄덕인다. 다소 비싸더라도 친환경 농산물에 그만한 가치가 있음을 많은 사람들이 인식하길 바랄 뿐이다.



원주에는 항상 양파가 있다
고랑마다 놓여 있는 노란 상자에 ‘원주시양파연합회’라는 글씨가 영롱하게 새겨져 있다. 조 씨는 뿔뿔이 흩어져 있는 양파 농가들을 규합, 올해 원주시 양파연합회를 결성하며 초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양파연합회는 양파 농가를 규합하고 농사법을 교육하며, 수확량을 조절하거나 판로를 확보하고 적재적소에 보조사업이 진행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조 씨가 원주시 양파연합회 회장으로 처음 진행한 것이 바로 양파 망 대신 사용할 플라스틱 상자를 보급하는 사업이다. 상자는 담을 때 품이 적게 들고, 모양이 잡혀 있으니 아래에 있는 양파가 눌려 망가지는 일이 없는 데다 공기가 순환해 상하는 것도 적다. 계속 활용이 가능하므로 친환경적이기도 하다.
현재 원주시 양파연합회에는 70가구 정도가 소속되어 있다. 이는 생각보다 많은 숫자다. “전에는 ‘원주에서 양파 안 된다’고 했거든. 농업기술센터에서도 양파 농사를 독려하려고 견학도 시켜주고 교육도 했는데 너무 안 되니까 다 주저앉았던 거야. 원주 기후에 맞는 재배기술이 부족했던 거지.” 조 씨가 양파를 시작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다른 작물은 너무 흔하잖아. 다 경쟁이고, 그러면 농사꾼이 농사꾼을 죽이게 되거든. 우리는 다른 곳에서 안 하는 것을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지. 우리가 성공을 하면 다른 농가들에게도 알려 주고.”
2~3년의 침체기가 지나고 조 씨가 양파 농사에 성공하며 원주에서도 양파가 된다는 인식이 생겨났다. 조 씨의 다음 목표는 원주의 농부들이 더 많은 양파를 재배하는 것. “앞으로 지금까지 지은 것보다 30%씩을 더 심자고 했어. 앞으로 원주 하면 항상 양파가 있다고 할 수 있도록. 그리고 관행으로 하기보다는 이왕이면 ‘원주푸드’ 인증을 받으라고 해. 원주에서 원주 양파를 소비하고, 서울 공공급식에도 올라갈 수 있으니까. 판로는 다 있어.”
말을 마친 조 씨는 다시 양파 상자를 저울에 재고 트럭에 옮기기 위해 움직인다. 꼬박 8개월 동안 비바람과 땀방울을 맞으며 자란 양파가 이제 손님들을 맞으러 갈 시간이다.




글 이새보미야 사진 원춘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