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9-03-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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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 [포맷변환]1552009414c95a3f436b14810927ae5b01d44b99ab.jpg | 조회수 | 3,776 |
감자 수확하던 날 원주 농부 김광석 씨 이야기 ![]() 원주시 호저면 산현리. 섬강의 지류를 끼고 형성된 널따란 산현들 한가운데 비닐하우스가 있다. 농부 김광석 씨가 감자를 재배하는 곳이다. 올해 첫 감자를 수확하기로 한 날. 아침 일찍 가족들과 나온 김 씨는 부지런히 감자 줄기를 모두 정리하기 시작했다. 호우주의보가 내렸을 정도로 빗줄기가 아주 거세 큰일이었다. “5월에 큰 장마 드는 건 생전 처음이네.” 호우주의보가 내렸을 정도로 빗줄기가 거셌다. 바로 옆에 이웃한 논에서 물이 넘쳐 흙을 조금 파내자 물이 고여 있는 것이 보였다. 질척한 흙 때문에 남편 이상기 씨는 아예 맨발로 흙을 누볐다. 다른 두둑보다 일주일가량 늦게 심은 자리라 가장 마지막에 캐야 했지만, 비 때문에 예정보다 이르게 가장 먼저 캐게 생겼다. 감자가 거의 자란 상태에서 물이 들면 뿌리가 썩어 망가지기 때문이다. “아직 좀 더 있어야 되는데, ‘물심’을 받는 바람에….”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어쩔 도리가 없다. 수시로 돌보았다고는 하지만, 잘 되고 안 되고는 운이란다. ‘올해 감자로 돈 좀 벌 줄’ 알았는데 아쉽게 됐다고 웃어 보인 김 씨는 이내 호미를 집어 들고 감자를 캐기 시작했다. 농부라는 천직에 대하여 김광석 씨는 호저 출신이 아니다. 친정은 원주 시내. 친정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집에서 살림을 하고, 1년 정도 짧은 회사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스물한 살, 비교적 이른 나이에 호저로 시집을 오게 됐다. “예전에 어떤 책을 봤는데, 전쟁 때 피난 가서 사는 얘기였어요. 문 앞에 물이 흐르고 이것저것 심어 먹고. 그 책의 이미지가 너무 좋아서, 시골이라는 거부감 하나도 없이 환상에 젖어서 왔어요.” 김 씨는 그렇게 ‘멋모르고’ 농사를 짓게 됐다며 웃는다. 지금 감자를 기르고 있는 이 400여 평이 처음으로 산 땅이었다. 농사꾼의 삶은 쉽지 않았지만, 워낙 땅값이 싸던 시절이라 열심히만 하면 보람이 있었다.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 어느새 39년이 흘렀다. “항상 땡볕에서 일해야 하잖아요. 계속 쪼그려 앉아 있어야 하고요. 그게 제일 힘들죠.” 김 씨는 최근 무릎이 아파 병원을 다니고 있다. 병원에서는 쪼그려 앉으면 안 된다고 하는데, 농사를 지으려면 그렇게 안 할 수가 없으니 큰일이다. “그래도 사람이 바뀐다는 게 쉽지 않아요. 천직이라 생각하고 지금까지 이렇게 살았어요. 불만은 없지만, 겁나는 건 있어요. 농사꾼은 정년이 없잖아요. 진짜로 죽을 때까지 하는 일이니까.” 쫀득쫀득한 올감자 조풍 이들이 키우는 감자의 품종은 ‘조풍’. 쫀득쫀득한 식감의 감자다. 살짝 단맛이 돌아 쪄먹어도 맛있지만, 원체 덜 부서지는 편이라 주로 반찬용으로 사용한다. 특히 감자전·옹심이 등을 만들면 맛있는 품종이란다. 조풍은 올감자 즉 조생종으로 빠르면 75일, 보통 8~90일이면 수확이 가능하다. 노지에서 주로 재배하는 수미 품종보다 숙기(熟期)가 열흘 정도 빠르다. 김 씨는 비닐하우스에서는 조풍을, 600여 평의 노지에서는 조풍과 수미를 함께 재배한다. “올해는 2월 20일쯤, 밖에 눈이 하얄 때 감자를 심었어요.” 생각해 보면 우여곡절이 많았다. 지난해 겨울 25상자의 보급종 종자를 신청했지만 막상 파종기가 되어서는 6상자 밖에 받지 못했다. 이 때문에 일부 고랑은 조금 늦게 감자를 심어야 했고, 노지의 일부는 집에서 받은 씨감자를 심기도 했다. 날씨 변덕이 심해 감자가 얼 뻔도 하고, 수확 직전인 5월 중순에는 30℃까지 기온이 올라가면서 잎이 노랗게 변하기도 했다. “일교차 심할 때 감기에 잘 걸리듯이, 감자도 마찬가지죠. 생장점이 끊어져 버려요.” 거기에 폭우까지 내렸으니, 감자도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건강한 유기농 감자가 탄생하기까지 비닐하우스의 입구 바로 앞에 엊그제 농약 검사를 위해 시료를 떠간 부분이 남아있다. 4~5년째 화학비료가 하나도 안 들어가 올해부터는 유기농 인증도 받게 됐다. 유기농 감자는 처음부터 남다르다. 종자 자체는 같지만, 일반 농가에서 소독한 후 심는 것과 는 달리 김 씨는 캐놓은 씨감자를 그대로 사용한다. 좀 더 안전한 친환경 재배를 위해서다. 재배하는 과정에서도 농약을 절대 사용하지 않는 것은 물론, 화학비료조차 사용하지 않는다. 오직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에서 공시한 유기질 퇴비만을 사용할 뿐이다. “친환경은 풀하고의 싸움이에요. 감자는 그래도 손이 덜 가는 편이죠.” 최대한 고랑을 좁혀 잡초가 자라날 면적을 줄이고, 이랑에 덮인 비닐 아래로 ‘점적 호스’를 설치해 효율적으로 물을 공급하는 방법이 비법이라면 비법이다. 덕분에 땅은 아주 건강하다. 본격적으로 감자를 캐기 시작하자, 숨어 있던 생명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호미가 지나간 자리에 청개구리가 펄떡거리고, 꿈틀거리는 지렁이는 손가락만큼 굵다. 지렁이가 흙 속을 다니며 낸 길 덕분에 감자는 숨을 쉰다. 땅이 좋은 만큼 감자도 더 신선하고 튼튼해진다. 30년 친환경 농업이 꿈꾸는 내일 김 씨 내외는 원주생협의 초창기 멤버다. 원주생협의 전신, 호저소비자생활협동조합의 창립이 1989년이니 29년째 생협과 관계를 맺고 있는 셈이다. “호저교회의 한경호 목사님과 한기동 목사님 등 목사님들이 주가 돼서 창립했어요. 저는 교회는 안 다니는데, 바로 옆에 살았거든요. 친환경 농업을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말씀하셔서 ‘괜찮을 것 같은데요’하고 시작하게 됐죠.” 첫 거래는 수원 고등교회였다. 봉고차에 물건을 싣고 가 배달을 하고 돌아오다 저녁 한 끼를 먹으면 그만이었을 정도로 신념만 갖고 시작한 일이었다. 그러나 수십 년이 지나도 친환경 농부가 처한 현실에는 아쉬움이 많다. 이상기 씨는 현실적인 문제들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우리는 무농약 인증을 받는 데에만 7년이 걸렸지만, 학교 급식 수량을 맞추기 위해 2년 만에 유기농 인증이 된 곳이 많습니다. 엉터리인 셈이죠.” 유기농 인증을 위해서는 토양 검증을 1년에 한 번씩 받아야 한다. 시료를 통해 친환경농산물인증 검사를 하는 것도 필수다. 검사비는 농부가 부담한다. 농사에 필요한 유기농 약은 일반용보다 서너 배 비싸고, 퇴비 역시 공시번호가 붙은 것만 사용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출하되는 가격은 일반 농산물과 비슷한 수준이다. 화학비료를 1~20%만 써도 수확량이 굉장히 늘어난다는 점을 고려하면, 비싼 자재가 투입되고 더 많은 과정과 인력이 필요한 유기농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정부의 지원과 생협의 제도 개선, 소비자들의 의식 변화가 필수적인 셈이다. 가족과 함께해 더 좋은 김 씨의 남편 이상기 씨는 얼마 전 퇴직해 전업 농부가 됐다. 딸은 분가했고, 객지 생활을 하던 아들 이준형 씨가 돌아와 일손을 돕는 중이다. 그렇지만 남편이나 아들보다 나은 ‘효자’는 밭일을 할 때 쓰는 ‘작업 방석’이란다. 곧이어 두 번째 효자도 등장한다. 바로 경운기 뒤에 부착해 사용하는 ‘감자수확기’다. 땅이 질어 걱정이었는데 다행히 이랑의 반 정도는 기계가 다닐 수 있었다. 털털거리는 감자수확기가 두둑을 지나자 요술처럼 감자가 쏙쏙 올라온다. 김 씨는 기계로 수확하지 못하는 자잘한 놈들을 솎아내며 뒤따랐다. 호미로 한 시간 동안 캔 거리가 기계로는 7~8분 만에 뚝딱이다. 그러나 마냥 고맙고 손쉬운 게 전부는 아니다. 김 씨는 크게 다친 일이 없지만, 남편 이상기 씨는 풍구질 기계에 손가락을 잃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아들이 ‘가업’을 이었으면 좋겠느냐는 질문에는 선뜻 답하기가 어렵다. “일하다 보면, 신랑 땀 흘리는 건 안 안타까운데 아들이 힘들어하면 속상하더라고요.” 근방 농사꾼 중에서는 김 씨 내외가 가장 젊다. 누군가 농사는 지어야 하고, 청년 농부의 필요성에도 공감하지만 아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면 김 씨는 안쓰럽기만 하다. “새끼라도 조금 편하게 살면 좋지 않을까 싶고, 그래요. 사람이 참 간사하죠? 막상 농사짓겠다고 하면 밀어주긴 할 텐데….” ![]() 농부의 취미생활은 쉬는 시간. 다들 달달한 ‘믹스커피’를 마시는 동안 아들 이준형 씨는 집에서 직접 내린 더치커피를 음미한다. 취미생활이랄까. 김 씨에게도 취미를 물었다. 요즘은 여행에 재미를 붙였다고 한다. 그동안은 여유가 없었지만, 남편의 퇴직 후 일부러 시간을 내려고 한다. “농사일이 그래요. 하자면 날마다 열심히 해야 하지만, 안 하려면 며칠 정도는 그냥 둘 수도 있거든.” 세찬 비에 밭을 돌보러 왔던 이웃 농부들이 하나둘 곁에 와 앉았다. 소소한 수다 역시 농부의 취미라고 할 수 있을까. “감자 값이 많이 떨어졌대.” “그 동안 너무 비쌌어. 원래 나올 때 되면 떨어지잖아. 너무 비싸도 안 좋아.” “잘하면 작년보다 만 원 정도는 더 나가지 않을까 했는데….” “감자가 나와야 말이지!” 좌중에 웃음보가 터진다. “농사에서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1%밖에 안 돼요. 인위적으로 하려고 해도 안 되죠. 내 맘 같지가 않아요. 그래도 올해 감자는 참 깨끗하고 예쁘네요.” 글 이새보미야 사진 원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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