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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이자형 싱그런협동조합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9-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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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이자형 싱그런협동조합

농민에게는 행복을, 소비자에게는 건강을



춘천시 동내면 거두리의 신축건물이 밀집한 곳에 싱그런협동조합이 자리를 잡고 있다. 싱그러운 연두색 출입문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작고 비좁은 사무실 안에는 각종 포장재와 서류들, 제품을 보관해 두고 있는 냉장고, 책상 등으로 발디딜 틈 조차 없어 보였다. 그곳에서 싱그런협동조합의 ‘발’로 불리는 이자형 상임이사가 반갑게 맞이해 준다. ‘농민에게는 행복을, 소비자에게는 건강을’ 모토로 협동조합을 운영하고 있는 싱그런협동조합.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생산자와 소비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바르게 전달하기 위해 불철주야, 하루 24시간이 모자란 싱그런협동조합의 세계를 들여다 보았다.
1인 가구가 늘어나고 혼밥, 혼술족이 늘어나면서 가정간편식의 인기도 높아지고 있다.

대형 유통업체들도 이들을 겨냥해 장기간 보관하면서 식사를 할 수 있는 냉동 가정간편식(HMR·Home Meal Replacement) 개발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혼밥 트렌드에 맞춰 원하는 만큼씩만 즐길 수 있도록 1인분씩 포장된 상품도 눈길을 끈다. 이들과의 경쟁에 당당하게 나선 협동조합이 있다. 농산물 가공식품을 통해 ‘농민에게는 행복을, 소비자에게는 건강을’ 선사하고 싶은 싱그런협동조합(이사장:안경자)이다.

싱그런협동조합의 상임이사를 맡고 있는 이자형(54) 이사는 2012년 새농촌건설사업의 마을 컨설팅을 맡으면서 춘천시 동내면 사암2리와 인연을 맺었다. 그곳에서 농산물이 형편없이 취급 받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온 정성을 쏟아 재배한 가지 1상자(50개)의 가격이 많이 받을 때 1만1,000원, 출하가 몰릴 때는 500원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 과정을 지켜본 그는 당시 마을 이장이었던 지찬주 전 이사장과 머리를 맞대고 ‘가공식품’을 만들기로 의기투합했다. 이대로 간다면 농업이나 농민의 희망도 없을 것 같다는 위기의식에서였다.​

호주에서 생활하던 그는 바이오 관련 프로젝트 제의를 받고 2006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호주와 자연환경과 시스템이 비슷한 경기도 일산에 자리를 잡았지만 뜻밖의 시련이 다가왔다. 황우석 사태로 모든 바이오 관련 자금이 묶인 것이다. 1년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중 강원도에 바이오 관련 산업이 꿈틀댄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렇게 호수가 있는 춘천에서 바이오퓨처라는 벤처회사를 만들면서 정착하게 됐다.

“호주에 있을 당시 팝파야 바이러스에 관한 연구를 했는데 한국의 직장생활과는 너무 달랐어요. 회식은 당연히 없고 점심도 도시락을 싸가야 했지요. 그래도 잘 적응하면서 지냈는데 친구가 한 달 동안 방문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서야 향수병에 걸린 것 같아요. 2년을 향수병으로 고생했어요. 결국 친구가 다녀간 지 2년이 지나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어요. 황우석 사태로 일이 잘 안 풀렸지만 결국 수도권과 가깝고 호수가 있는 춘천에 정착하게 됐지요. 춘천을 택한 것은 아무래도 첫 번째가 자연환경이었습니다. 가족들도 만족해했어요. 아무래도 협동조합을 하기 위해서 춘천에 오게 된 것 같아요. 지찬주 전 이사장님을 만난 것부터 심상치 않았으니까요.”​

그가 보기에 지찬주 전 이사장은 이장을 그만둘 정도로 마을기업을 간절하게 원했다. 마을의 공동이익을 창출하는 것이 지 전 이사장의 꿈이었기 때문이다. 지 전 이사장은 강소농 교육을 받다가 협동조합 이야기를 듣고 그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는 협동조합 설립에 반대했다. 지속적으로 도움을 받아야 할 것 같은데 활성화 사업 외에 뚜렷한 지원이 없어 보였다. 농업회사법인을 만들자고 제안했지만 지 전 이사장은 협동조합을 고집했다. 농협 로컬마트에 제품을 납품하기 위해서는 협동조합이 필요했던 것이다.

“지 전 이사장님이 농협에도 관여하고 계셔서 농협으로부터 농가공 업체가 없으니 가공업체를 만들어달라는 제안을 받은 것 같았어요. 그렇게 5명의 조합원이 뭉쳤지요. 조합원 중 1명은 여성이었는데 마을에서 사무장을 맡고 있던 조선족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이 분이 반대를 했는데 로컬마트에 납품하기 위해서 설득했습니다.”​

싱그런협동조합의 출발점이었다. 마을기업 사업에 신청했다 탈락했지만 중소기업청 소상공인협동조합 사업의 공동장비 분야에 선정돼 고춧가루 소포장이 가능한 소분기 한 대를 지원받았다. 드디어 2014년 8월 농민 5명이 각각 500만원씩 출자해, 지찬주씨의 농가 지하창고에서 활동이 시작됐다.

싱그런협동조합은 조합원들이 재배한 고추를 인근 영농조합법인 호반농산에서 고춧가루로 가공, 소포장해 판매하는 간접생산 방식으로 출발했다. 호반농산은 식품안전인증제도인 해썹(HACCP), 도의 품질보증제도인 물방울·푸른강원마크를 모두 인증 받은 업체여서, 싱그런협동조합의 제품에도 해당 마크를 사용할 수 있었다. 또 ‘키 크는 쌀’로 유명한 하이아미쌀을 친환경 우렁이 농법으로 재배해 무농약 인증도 받았다.​

그렇게 생산된 제품을 들고 조합원들은 지역의 농민단체임을 내세워 춘천지역 초·중·고교를 다녔다. 이미 학교급식이 시작됐지만 틈새시장을 공략해보자는 전략이었다. 학교도 ‘지역농민이 생산한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선호도가 높았지만 선뜻 결정하지 못했다. 덜컥 계약을 했다가 공급이 제대로 안되면 문제가 생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 협동조합이 있는 동내면 내 몇 학교가 공급을 받기로 결정해 학교급식이 시작됐다. 이곳에서 생긴 수익금이 싱그런협동조합의 밑바탕이 됐다.

2015년은 제품개발을 위해 좌충우돌하던 시기였다면 지난해는 본격적인 제품 개발에 나섰던 해였다. 올해는 유통망을 넓히기 위해 발에 땀이 나도록 뛰고 있다. 올해 참여한 박람회만 7~8곳이다. 춘천 뚝방마켓과 담벼락마켓, 시민마켓에도 매번 참여한다. 매주 금·토·일요일은 경기도 고양의 하나로마트에 가서 판매한다. 직판장, 직거래장 등​ 제품을 판매할 수 있는 모든 곳에 다닌다. 지난해는 좋은 일도 많았다. 11월에 우수소상공인협동조합 표창장을 받았고, 12월에는 6차 산업 인증도 받았다. 농촌융복합산업 사업자 인증은 아직까지 특별한 지원은 없지만 몇 가지 좋은 점이 생겼다. 인증을 받으면 대형마트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다. 진입장벽이 낮아지는 셈이다.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춘 제품생산에도 주력하고 있다. 소량 다품목으로 판매량을 높이고 있어 1인 가구에게 인기다. 보통 쌀은 20㎏, 10㎏, 4㎏ 등 3가지로 구분되지만 싱그런협동조합은 1㎏, 500g, 250g 등 중량을 낮춘 소포장 상품도 출시했다. 고춧가루도 100g단위로 판매하고 들기름도 160㎖ 등의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사회공헌에도 일익을 담당한다. 지역 내 취약계층에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지역 소농민의 농산물을 소매가격에 준한 값으로 수매하는 등 상생사업을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역학교에 장학금 지원과 한기범희망재단과 MOU를 하고 ‘키크는 쌀’ 판매 수익금 1%를 기부하고 있다.

위탁생산(OEM) 사업으로도 영역을 넓히고 있다. 대부분 지역 업체들의 제품생산을 위한 것으로 지역공동발전을 목표로 사업을 추진 중이다. 지역 내 고춧가루 생산을 위해 푸른곡산, 호반영농조합과 업무협약을 했다. 들기름 생산을 위해 남산식품과, 현미식초 생산을 위해서는 마마스팜영농조합과 업무협약을 했다. 지역농협과도 1차 가공 농산물 판매를 위한 업무협약을 맺는 등 지역 기업과 거래량을 늘리고 있다.​

싱그런협동조합의 2018년은 소비자 조합원을 시스템화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 중 하나다. 최근에는 춘천시로부터 사업을 받아 고은리 120여 평 부지에 유기가공센터를 건립할 예정이다. 빠르면 7월 말부터 본격적인 건립에 들어간다. 이곳에서는 무농약두부 등을 생산할 예정이다. 공장이 설립되면 자체 예상 매출을 3억 원~12억 원까지로 보고 있다. 아쉬운 것은 자금이 가장 큰 문제다. 자부담도 걱정이고 쉽지 않다. 무엇보다 자금을 확보하는 것이 힘에 부친다. 협동조합은 매출이 3억여 원이 넘는데도 대출받기가 힘들다.
“소상공인 특별자금 지원되는 것이 있지만 협동조합은 주인이 없다는 이유로 대부분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꺼린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협동조합을 위한 특별 대출금 등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자금이 필요한 것은 원물을 사기 위해서다. 수매자금이 필요한데 자금이 부족해 지난 8~9월에는 쌀 없이 보냈다.”

싱그런협동조합의 자랑거리나 보배거리가 있다면 협동조합 설립일인 2014년 8월14일부터 지금까지 매주 이사회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협동조합의 갈등구조 중 하나는 조합원 간 소통 문제에 있다는 현실을 극복하자는 일환이었다. 아무리 바쁜 농사철이라도 반드시 이사회를 통해 소통을 나누고 있다. 명함 제작부터 예산의 효율적인 운영 방안까지 모든 것을 이사회에서 논의한다.​

싱그런협동조합의 2014년 매출은 1억여 원, 2015년 2억4,000만원, 2016년 2억7,000만원으로 아직 배당금을 나눌 정도의 규모는 아니다. 지금은 3억1,000여만 원으로 처음보다 3배 정도 뛰었다.

싱그런협동조합은 여전히 ‘농민에게는 행복을, 소비자에게는 건강을’ 선사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글·사진 원상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