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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생태마을에서 꿈꾸는 청년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9-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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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최지형 (사)서곡생태마을 실무자

서곡생태마을에서 꿈꾸는 청년
글 이새보미야 사진 원상호



원주의 남쪽, 판부면 서곡리. 서곡리 용수골 계곡에는 ‘서곡생태마을’이 자리해 있다. 교육, 복지, 일자리, 문화다양성, 인프라 구축 등 지역의 공동체를 활성화하고, 생명존중 사상을 기반으로 생태적이며 지속가능한 마을을 추구하고자 모인 사람들의 마을이다. 서곡 2~4리의 원주민들과 귀촌한 이주민들이 주축이 되어 지난 2011년 설립된 (사)서곡생태마을(이사장:문병선)은 2013년에는 원주 내의 마을기업 중 최초로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기도 했다.
서곡생태마을은 다양한 활동으로 화제를 불러일으켰지만, 가장 유명한 것은 역시 교육공동체 활동. 2006년 공동육아협동조합 소꿉마당의 조합원 7가정이 서곡리의 땅을 공동구매해 들어온 것이 서곡생태마을의 태동이라고 볼 수 있다. 아이들이 서곡초등학교에 진학하며 주민들은 학교 활동에도 활발히 참여하고 방과후학교인 참꽃어린이학교를 설립하기도 했다. 2012년 서곡초등학교가 혁신학교로 탈바꿈하며 어린 자녀를 둔 젊은 가족들이 서곡으로 많이 이주했고, 아이들이 자라며 자연누리숲학교, 대안학교인 길배움터 등이 점차 생겨났다. 자연스럽게 교육공동체는 지속가능한 마을공동체로 성장, 서곡생태마을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나자 서곡생태마을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다. 마을에 대해 알고 싶을 땐 그곳에 사는 사람을 만나봐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사)서곡생태마을의 활동가 최지형 씨를 만나보기로 했다.

마을이 키운아이 마을에 남아

최지형 씨는 교육을 위해 서곡으로 이주한 귀촌 가정의 자녀다. 다섯 살 무렵 서곡으로 이사를 온 후 소꿉마당어린이집을 졸업하고, 참꽃어린이학교를 다녔다. 이후 소초면 치악산 자락의 기숙사제 대안학교 참꽃작은학교에서 공부했다. 중등교육과정을 마친 후 최 씨는 도시로 나가는 것을 선택하지 않고 다시 서곡생태마을로 돌아왔다. 마을이 키운 아이가 마을에 남아 마을을 이끌어가는 선순환이 이뤄진 셈이다.
다른 또래 친구들이 대부분 외지로 나갔지만 최 씨는 남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집이 여기라서요.” 그 이유는 설렘이라기보단 숨 쉬듯 자연스러운 종류의 애정이다. “서곡을 좋아해요. 그리고 저까지 가면 이곳에 젊은이가 없잖아요. 책임감이라기보다는… 좀 더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고자 하는 ‘야망’이라고 할까요.”
최 씨가 서곡에서의 삶에 불편을 느끼는 건 딱 한 가지, 교통이다. 버스가 하루 다섯 차례뿐이라 나들이하기가 힘들다. 친구들을 잘 못 만나고 문화생활도 잘 못 하는 대신, 소비를 거의 안 하게 되는 건 장점인 것도 같다. “그래서 제 야망 중 하나가 서울시의 자전거 서비스 ‘따릉이’처럼 서곡에서 자전거 공유 서비스를 하는 거였어요. 운영비용 등의 이유로 이사장님은 안 되겠다고 하셨지만요.”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묻자, 최 씨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돈’이라고 답했다. “대상에 따라 여러 가지일 것 같아서요. 저처럼 교통편이 불편할 수도 있고, 무언가 해보고자 하는 ‘메이커(만드는 사람)’들을 위한 플랫폼을 만드는 문화 인프라 측면도 있고요. 지금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건강 반장 프로젝트’라고, 각 리마다 건강 반장을 정해 건강을 돌보는 프로젝트를 원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과 함께하고 있는데, 그런 것도 해당되겠죠.”
서곡생태마을의 탄생으로 서곡에서는 꽤 많은 활동이 활발하게 벌어져왔다. 다양한 활동의 기반이 되어주는 것은 근교 지역의 자연환경이다. “‘용수골 꽃양귀비 축제’나 ‘용수골 작은 음악제’ 같이 마을의 특성을 살린 축제를 열어요. 마을 동아리 활성화 사업, 의료사업 같이 지역 주민들에게 필요한 일들을 많이 하고 있다는 것도 달라진 점이고요.” 그러나 최 씨는 그 변화를 체감하고 있지는 않다. 서곡에 옴으로써 좋아진 점도 확연히 꼽기가 어렵다. “아기 때 현대아파트에 살았는데… 서곡에 와서는 자유롭게 뛰어다닐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아요.” 어린 시절 이주해 마을과 함께 성장한 최 씨에게 서곡생태마을의 자연과 자유는 공기처럼 너무 당연한 환경인 것이다.

마을에서 꿈꾸는 지속가능한 삶

최 씨의 하루 일과는 단순하다. 9시쯤 일어나 10시쯤 사무국으로 출근한다. 집은 언덕을 등지고 있고, 사무국은 바로 집 앞, 길 건너 논밭을 앞두고 있다. 서곡생태마을 사무국에서는 각종 집담회나 축제 준비 회의 등이 불규칙적으로 이루어진다. 최근 서곡생태마을에서는 도시재생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렇게 진행되는 사업의 회계 등 사무보조도 맡고 있다. “많은 것을 배우고 있어요. 요즘은 사업계획서 쓰는 법을 배우고 있지요.” 퇴근은 저녁 6시쯤. 시골이다보니 퇴근한 후엔 딱히 할 일이 없다. 그래서 유튜브 동영상을 자주 본다. “심심하지 않도록 저도 ‘콘텐츠’를 만들어보려고요.” 무위당학교에서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강의를 들은 후 무언가 만들어내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단다.
최 씨는 지난해 상반기 원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에서 원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에서 일을 하기도 했다. 이 때 닿은 인연으로 반 년 동안 필리핀으로 해외봉사를 다녀오기도 했다. 빈곤퇴치와 지속가능 마을 만들기 사업을 진행하는 국제개발 NGO 사단법인 캠프(CAMP)의 ‘타워빌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이다. 세계 각지에서 모인 활동가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주민들을 서포트하는데, 그곳에서 최 씨가 한 일은 주로 ‘지렁이를 키우는’ 것이었다. “타워빌은 필리핀 정부에서 도시개발을 하면서 강제이주시킨 철거민들이 모여 사는 빈민촌이에요. 다양한 사회적기업이 들어와 이들을 돕는데, 양계나 봉제 등을 통해 수익을 내고 일자리를 만드는 사업이 진행 중이에요. 저는 양계팀이었는데, 키우는 닭의 먹이가 부족해서 지렁이를 키우다 보니 6개월이 지났어요.”
필리핀에서의 생활은 최 씨에게 큰 경험이 됐다. 친환경적인 분위기는 물론, 그곳의 시스템이 특히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타워빌에는 여러 ‘센터’가 있는데, 참가자들은 숙소에서 잠을 자고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빈 공간을 활용해 수익을 내거나 활동을 할 수 있다. “뭔가를 해보려고 할 때 숙식이 가능하고, 시도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는 공간이 있다는 것이 정말 좋았어요. 먹고, 자고, 일하는 삼박자가 잘 갖춰지니 생존의 그 다음 단계를 고민할 수 있더라고요. 이상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백운산과 용수골, 치악산의 품에서 자라고 꽃축제와 숲학교에 일손을 보태던 최 씨는 필리핀에서 잘 적응했고 ‘보나 양계법’ 등 농업에 대한 지식도 여럿 익혀 왔다. 자연스럽게 친환경적인 삶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필리핀에서 돌아온 후에는 홍성의 청년협업농장을 방문탐방하기도 했단다. 그리고 다시 서곡생태마을로 돌아와 활동가가 되었다.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겠다는 최 씨의 야망이 진지하게 느껴지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최 씨는 한편으로 ‘마을 청년’이라는 수식어에는 어색함을 느끼기도 한다. 최 씨는 그저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싶’은 마음이기 때문이다. 서곡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고 싶긴 하지만 친구가 없고, 무언가 배우고 싶은 마음은 앞서지만 가지 않은 길에 대한 걱정도 크다. “최근엔 영어 공부를 할까 해요. 전공을 정하고 싶어도, ‘이게 아니면 어떡하지’하는 생각이 많이 들고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진로를 결정했는지 궁금해요.” 다만 최 씨는 서곡생태마을의 다른 주민들처럼 지속가능한 삶을 꿈꾸고 있을 뿐이다. “어떤 일을 하든, 뭐든지 즐겁게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