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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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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이정표이자 사랑방이었던 서점

중·고등학교를 다녔던 1980년대 원주 중앙동 동아 서관은 만남과 재회의 장소였다. 친구를 기다리면 서 여러 가지 신간을 볼 수 있어 친구가 조금 늦더 라도 지루하지 않았다. ‘다음에는 이 책을 꼭 사야지’라며 점찍어 놓은 책 들도 여럿 있었다. 가장 번화한 곳 건물이 서점으로 있던 시절, 그곳은 동네의 이정표였고 사랑방이었 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도, 친구를 기다리는 사람 도 서점에 들어와 책의 향기를 음미하곤 했다. 원주 "서점은 불가해한 힘을 가진 공공재 상품 다루는 장인들의 무대" 시내에만 꽤 규모 있는 서점이 여럿 있었고 원동 성 당 앞쪽과 남부시장 인근에서는 헌 책방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인터넷에 밀려선지 지금은 서점도, 헌 책방도 쉽게 찾아볼 수 없다. 대신 북카페나 북숍, 게스트하우스 와 함께하는 책방들이 하나둘 생겨나고 있다. 그나 마 책방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어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이시바시 다케후미의 「서점은 죽지 않는다」는 일 본에서 서점 운영과 출판유통이 ‘팔리는 책’ 위주의 매출 지상주의로 치닫는 현실을 비판하는 서점 사 람들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도쿄 한 상점가에 겨우 5평짜리 히구라시문고를 연 하라다 마유미, 전자책에 맞서 종이책의 우위를 말 하는 논객 후쿠시마 아키라, 주민이 100명인 마을 에서 잡화점 겸 서점을 운영하는 이하라 마미코, 카 리스마 서점인으로 불리는 이토 기요히코 그리고 그의 제자인 다구치 미키토와 마츠모토 다이스케, ‘보통 서점’을 실천하는 나라 도시유키, 그리고 후루 타 잇세이. 이 여덟 명의 서점 사람들은 다양한 배 경을 지녔고 서로 다른 서점에서 일하지만 공통적 으로 독자가 원하는 한 권의 책을 전달하는 서점의 위상과 소중함을 몸으로 보여준다. 또 지역사회와 함께 호흡하고 소통하는 서점의 현재와 미래를 고 민한다. ‘책’이란, ‘서점’이란, ‘서점인’이란 무엇인 지, 왜 서점의 본질적 가치와 미래에 대해 함께 생 각해야 하는지 이 책은 묻고 있다. 이를 통해 서점은 단지 책을 파는 장사꾼들의 세계 가 아니라 책이라는 불가해한 힘을 가진 공공재 상 품을 다루는 ‘장인’들의 무대임을 역설한다. 






농업에서 길을 찾다

지난 9월, 추석을 앞두고 원주에선 ‘전국청년활동 LIVE 청년쾌락’이라는 축제가 열렸다. 비슷한 또래 의 친구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관심이 많았기 에, 나흘의 행사 기간 동안 빠짐없이 참석하게 됐 다. 나를 가장 사로잡은 것은 첫날의 라운드테이블 로, 청년활동가를 한 명 골라 함께 대화하는 자리였다. 내가 선택한 청년활동가는 ‘농사’라는 키워드를 가 진 사람으로, 그는 기아(饑餓) 문제에 대한 해결방 안으로 농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무일푼으로 세계농업일주를 다녀왔다고 했다. 우리는 ‘청년의 삶’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테이블에는 자 조적인 한탄과 냉소도 있었지만, 그보다도 그것을 웃도는 에너지가 있었다. 한 시간 남짓이 금세 지나 가버렸다. 「파밍보이즈」는 라운드테이블을 함께 했 던 바로 그 친구가 쓴 책이다. 세 명의 청년이 의기 투합하여 2년여의 기간 동안 12개국 35개의 농장 및 생태공동체를 방문하며 겪은 내용을 기록한 것 이다. 동명의 영화가 나오기도 했는데, 책 쪽이 좀 더 이들의 농업 여행을 진중하게 담고 있다. 취업 대신 농업에 뜻을 둔 이들의 여정은 역시나 순탄치가 않다. 워킹홀리데이를 하며 굶기도 부지기수, 수십 개의 우프(WWOOF)1농가에 가고 싶어 도 긍정의 답변을 받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일을 하다 실수를 하기도, 힘들고 지쳐 서로 다툰 끝에 여행을 중단하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이들은 많은 농부들을 만나고, 많은 것을 깨닫는다. 유휴지를 무 단 점거해서 농사를 짓는 청년들을 만나기도 하고, ‘자연에게 받은 만큼 돌려주라’는 교훈을 얻기도 한다. 이들의 여정을 좇는 일은 부러움의 연속이었다. 안 그래도 나는 요즈음 ‘청년’이라는 단어에 자꾸 덧붙 여지는 무기력함이나 분노 같은 감정에 지겨워진 터였다. 그러나 이 책에서 이들이 지치지 않고 부딪 혀 나가는 것을 보면서, 그 용기와 열정이 나에게도 자꾸 질문을 던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건 심장을 뛰게 하는 종류의 것이다. 여행의 끝은 일상이다. 한 명은 고향에서 딸기농사를 짓고, 또 한 명은 생 협에 취직했다고 한다. 마지막 한 명, 저자는 농촌 청년들의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동식 주택 을 짓고 있다. 농촌공동체를 만들고 싶다는 저자의 꿈이 앞으로는 또 어떤 그림으로 그려질지, 새삼 궁 금해지는 것이다.




글 원상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