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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경제 이야기 [18] - 커뮤니티케어 학습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0-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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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을 넘어


현재 ‘어르신’이라고 불리는 우리의 선배 시민은 지역사회조직과 운동을 통해 70년대의 남한강 대홍수가 쓸어간 집과 재산, 생활의 터전을 재건함과 동시에 서슬퍼런 독재정권의 부정부패에 대항하고, 산촌과 어촌, 농촌의 곳곳에 신용협동조합을, 도시와 근린지역에서는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을 구축하고, 사회운동을 함에 있어 낮밤을 가리지 않는 학습으로 스스로를 견책하고 동료를 지지하며 오늘날 또 다른 세상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한 ‘한살림’을 비롯한 여러 가지 사회동력을 이끌어냈음을 기억한다. 원주는 70~80년대 민주화운동의 진원지인 동시에 21세기 사회적경제 배양터로서의 역할과 소임을 감당하며 운동의 산실이자 협동조합의 메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많은 활동가들의 배움터로 알려지고 있다. 어디 이뿐이랴. 우리 시대의 선배이자 존경하는 성직자 최기식 신부는 교회라는 담장 안의 성스러운 권위를 떨치고 지역복지의 선구자로서 가시밭길을 자임했다.

 협동조합의 산실이요, 메카라는 선배 시민의 유산의 무게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나의 부담은, 실로 그들이 몸으로 경험으로 그리고 삶으로 녹여내며 이어온 시대의 소명에 내 자신이 부응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다. 근본적 소양의​부족과 나태한 의지에 대한 자기성찰을 기본으로 하지만 나를 포함한 일선에 있는 수많은 선배, 동료, 후배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노여움도 한 몫을 한다. 이는 ‘더’ 잘 하지 못함에 대한 적극적 기대가 아닌, 왜? ‘하지 못함’에 대한 원초적 판단에 기인한다.

선배 시민의 경험과 교훈이 유산을 넘어 채무와 채찍으로 매섭게 느껴진다. 나는 2017년 봄에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에서 추진한 일본과의 민간교류인 ‘바람의 마을’ 연수에 참여한 적이 있다. 늦게나마 모이게 된 현재 ‘커뮤니티케어 학습’과 연계하면 이해가 쉽지 않을까 싶다. 
이후 몇 차례 간헐적인 모임과 고민은 있었지만 이렇다 할 결실이나 의미 있는 매듭은 쉬이 볼 수 없었으나 새해 들어 마련된 교육과 학습, 소통의 장이 된 모처럼의 기회가 물거품과 잡히지 않는 뜬구름에 대한 공론(空論)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절실하다. 지학순 주교와 무위당 장일순 선생을 비롯한 적지 않은 선배들이 몸으로 보인 가르침과 책무, 그 부름에 구체적인 응답과 화답의 길로 나아가는 것 같아 여간 반가운 것이 아니다. 각처에서 원주를 찾는 활동가들의 눈빛과 목적의식에 부끄럽지 않은 원주의 내용을 갖춰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원주가 과거의 유산을 우려먹는 것에서 나아가 보다 높은 비전을 향한 제2의 걸음을 내딛는 변곡점이자 전환점으로서의 시동을 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용현장에서 보장되지 못하는 안정과 초고령사회로 가속페달을 멈추지 못하는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의 위기를 방지하고, 불안과 고통을 완화시키는 것을 넘어 지역공동체 ‘원주다움’의 방식과 지혜를 모아 더욱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지역과 시대의 과제인 ‘커뮤니티 케어’를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우리에겐 필요하다. 고민의 깊이만큼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라는 숙의의 과정으로 사회복지를 펼쳐가기를 기대한다. 

 

덧붙임 

‘돌봄’이라는 용어만큼 포근하고 안정된 말이 어디 있겠냐만, 용어가 가진 정의와 상관없이 ‘돌봄’이라는 용어 이면에 잠재한 ‘자선적’, ‘시혜적’ 의도가 자리한 것 같기도 하여 씁쓸하기도 하다. 

사회복지에 인색한 정부의 잔여적 동정이 아닌, 시민의 당연한 권리와 요구와 필요의 ‘보장’을 향한 ‘사회복지’의 주체적인 자리매김을 위한 출발점으로써 용어의 전환과 도입을 제안하고 싶다. 더 많은 이의 학습과 참여와 노력과 행동을 다짐함을 전제로, ‘돌봄’을 넘어 ‘모심’과 ‘살림’, ‘섬김’으로의 사회복지를 확장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원주’가 되기를 바라면서...

 


글 추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