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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1938년 범띠 할머니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8-19
첨부파일 1938년_범띠_할머니.jpg 조회수 1,122

1938년 범띠 할머니



며칠 전 금대리 계곡을 찾아들었다. 독거노인 집수리를 지원하기 위해서이다. 

1938년 범띠 할머니의 고향은 황해도 옹진이다. 송해 오빠가 옆 동네 사셨단다. 8살에 한국 전쟁이 나서 연평도로 외삼촌식구들과 어머니 그리고 4형제가 피난을 왔고 연평도가 금세 피난소가 되었다고 한다. 그때는 얼마간 지나면 되돌아 갈 수 있다고 믿었건만, 70여년이나 흘렀단다. 연평도에 수많은 피난민들이 모였는데 전염병이 돌아 하루에도 3~40명씩 죽어 자빠졌다고 한다. 화장실도 없어서 바닷가에서 볼일을 보니 그것들이 둥둥 해변을 떠다녔고, 물이 없어서 그 바닷물을 이용하여 밥을 해먹었다고 하니…

점점 전쟁이 길어지니 군인들이 1차로 피난민들을 LST(전차상륙함)에 태워 전라도지방으로 실어 나르기 시작하였는데, 할머니 식구들은 외삼촌께서 아파 누워 계셔서 2차로 육지로 나오게 된 것이 제부도로 정착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먹고 살게 없어서 고생을 하다가 열여섯에 서울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스물여섯에 할머니는 결혼을 하시고 3남매를 두었는데, 88년 올림픽이 끝나고 이혼을 하시게 되어 3남매를 이끌고 이듬해인 89년 원주 백운산 자락으로 스며들었다.


 

돈이 없어서 원래 집주인이 새로이 계곡 위쪽에 집을 짓고 부수려고 하는 것을 겨우 얻어서 지금껏 30여년을 산에 의지하여 살아오셨다고 한다. 계곡 비탈에서의 삶은 고달팠다. 할 수있는 것은 집주변의 600평 비탈을 일구어 산나물이며 두릅나무를 심고, 철마다 계곡과 산을 누비면서 채취한 것을 시장에 내다 파는 일을 평생 하신 것이다. 악착같이 하셨단다. 무서운 것도 없이 먼 곳의 산을 넘어 다니시며 일을 하셨는데, 올해는 높은 곳에 있는 두릅을 따지 못 했다. 이제는 무릎이 아프고 허리에 늘 ‘열 패드’를 두르고 지낸다. 지붕을 개량하면서 양철지붕으로 했는데, 그 위로 떨어지는 소나기 빗방울소리가 이번에는 엄청 무서우셨단다. 악착같이, 무서운 것 없이 살았는데 소나기가, 이번 소낙비가 무섭다니…


 

큰아들은 장성하여 그나마 의지하려고 했건만 교통사고로 세상과 이별하고, 가끔 작은 아들이 오기도 하지만 장가도 못 간 50초반의 아들을 걱정한다. 아버지와 관계가 안좋았던 막내딸은 일찍이 시집을 갔더란다. 18살에... 정이 없는지 집을 찾지 않는다며 긴 여운을 남긴다. 취나물을 뜯어서 장에 갈때는 선글라스를 멋지게 쓰는 멋쟁이 할머니다. 또한 집에 걸린 액자에는 화려한 농악복을 입고 찍은 단체사진이 있다. 노인복지관 농악대 활동을 하셨단다. 장구며 꽹과리가 방 한구석에 얌전하게 있다. 노인복지관에서 민요 배우는 것도 재미가 있으셨다고 한다.

황해도 옹진에 있을 때 큰오빠네가 축음기가 있어 흘러나오는 장산곶 타령을 들으며 자랐는 데,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신다.

전국노래자랑에도 2회전까지 올라갔었다고 하니, 여간 흥이 있었던 게 아니다. ‘이제는 같이부를 친구도 없지만…’ 말을 잇지 못한다.

어제 마지막으로 꽉 막힌 방문에 유리 구멍을 내어, 밖을 내다 볼 수 있도록 만들어서 달아드렸다. 주방 창문도 새로 내고, 봄에 처음 할머니 집을 방문하고 주거실태조사를 했는데 공사 마무리는 여름이 무르익어서 끝나게 되었다. 서두르면 3일이면 되는 것을… 아무래도 이번 할머니 집수리 콘셉트는 “빛” 인 것 같다. 오래된 집구조이다 보니 안방 에서는 문만 닫으면 컴컴한 소굴이다. 창문이 없어서 문을 닫으면 세상에 전쟁이 나도 모른다고 하신다.

살림하는 방이 양쪽으로 꽉 막혀있는데 주무시는 방은 겨울에는 지낼 만 해도 한 여름 열대야나 폭염에는 어려움이 많을 수밖에 없다. 산속에 홀로 계시는데 문을 열어놓고 지내실수도 없는 노릇이다. 하나 있는 선풍기에 의지해 지내시는데 날개를 닦아서 사용하려고 풀었는데, 다시 조립을 끝까지 못하여, 안전망이 없는 상태로 사용하시고 있었단다.

“할머니 가져오셔봐!”

겉에 붙이는 안전철망을 쉽게 끼우고 고정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옛날 것이라 잘 안 되었다. 한참을 씨름하고서야 안전망을 끼울 수 있었다. 나도 흘린 땀을 닦아 내렸다. 오후 7시가 훨씬 지난 시간, 수고했다고 도라지 즙을 건네신다.

초저녁이지만 홀로 계셔야 하는 할머니 생각하니 영 엉덩이를 떼지 못하겠다. 세찬바람과 함께 내린 이번 소낙비에 무서움을 느끼셨다는 말을 들으니 맘이 영 편치 않다.

“수고했다고, 이제는 그만 오겠다고.........” 주섬주섬 공구를 챙겨 오르막길을 오른다. “올 가을에 밤 주우러 와” 

뒤돌아보니 아직도 손을 흔들며 배웅을 하시고 계셨다. 내일은 누군가 산길을 따라 할머니 집을 들릴까? 고향에 홀로 계신 나의 어머니께서도 범띠시다.
 

옛날 집은 방에서 마당을 나가려면 몇 계단의 높낮이가 있다. 

나이가 들면 낙상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계단이나 마루가 필요하다. 

환경개선도 되고 낙상의 위험도 덜어드렸다.

 

주방에 창문이 없으니 항상 어두웠다. 그래서 불을 켜고 살았다. 
그리고 음식을 할 때도 불편했다.
 

안전바는 노인분들이 앉았다 일어서거나 높은데서 낮은데로 이동하실 때 꼭 필요합니다.


 글 변재수 ㈜노나메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