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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나 때는 말이야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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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때는 말이야~”

“사회적 경제의 성공 조건”
내가 사회적경제와 인연을 맺은 것은 그리 오래된 과거가 아니다. 2010년 8월경 친구인 박병옥 당시 청와대서민정책비서관과 점심식사를 했던 것이 그 계기였다. 그는 부임하자마자 사회적기업정책을 담당하게 되었다고 나에게 정책과 관련된 사항을 문의했다. 이후 사회적기업이란 생경한 단어에 이 끌려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가능한 한 현장에 가려고 했고 단순한 면담이 아니라 늦은 밤 술잔을 앞에 두고 현장활동가들과 시간을 함께 하려했다. 이후 2011년 2월 청와대 내에 사회적기 업육성 TF의 설립, 6월 9일 국민경제대책회의에서의 사회적기업육성종합대책 발표, 같은 해 8월 청 와대내 협동조합기본법 작업팀 결성, 12월 29일 국회에서 법안의 만장일치 통과까지 사회적경제라는 단어는 내 머리를 지배하는 단어였다.

 경제학을 하면서 항상 고민되었던 것은 바로 시장과 정부와의 관계설정이었다. 그러면서 어느덧 도 달한 결론은 단순히 시장과 정부만 있다면 대다수의 국민들은 불행해진다는 사실이었다. 기존의 시 장은 소수 주주의 지배에 의해 운영되며, 그들의 이익만을 위해서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시 장의 활력을 증가시킨다고 국민들 모두에게 제대로 된 일자리를 보장해 주는 것도 아니다. 정부 또한 이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없다. 정부란 “국민복지에 복무하는” 추상적인 그 무엇이 아니다. 구체적으 로는 정치인과 공무원의 세계를 말하며 많은 경우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해법 중의 하나는 기존의 시장과 정치·관료체계의 외곽에 건강한 시민사회의 거대한 저수지 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실현하는 중요한 수단이 바로 사회적경제라는 점이 나를 이끌었다.



사회적경제가 단순히 시장과 정부의 기능을 보완하는 역할을 하는지 아니면 인류의 새로운 경제사 회시스템을 만들어가는 지름길인지 나는 단언할 수 없다. 그리고 그러한 논쟁에 관여할 생각도 별로 없다. 중요한 것은 지금보다는 훨씬 더 나은 세상을 협동조합과 사회적기업이 충분히 만들어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살펴보면 우리가 가야할 길은 아직 너무 먼 것에 당황하게 된다. 사회적기업육성법(2007년) 이후 1조원 가까운 예산이 투입되었으나 자립적 발전은 아직 요원하다. 협동조합기본법 발효 이후 협 동조합 설립붐이 생겨나고 있으나 그 생존력에는 적지 않은 의구심이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 는가? 나는 적어도 다음의 3가지가 중요하다고 본다.

첫째는 사회적경제영역이 향후 한국사회의 발전에 필수적이라는 비전을 제대로 세우는 것이 중요 하다. 데이비드 캐머런 정부의 국정아젠더인 ‘큰 사회’(big society)론은 영국이 ‘깨진 사회’(broken society)로 되어간다는 위기감의 반영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사회적경제의 강화가 자리잡고 있 다. 2012년을 세계협동조합의 해로 규정한 유엔의 결의, 프랑스 올랑드 신정부에서 새로운 경제부처 로서의 사회경제연대부를 창설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 분야가 정부정책의 중 심 아젠더로 발전하고 있지 못한 듯하다. 협동조합기본법 제정, 사회적기업육성, 미소금융 등 개별적 으로는 좋은 정책체계가 구비되어 있음에도 이 모든 것이 국정의 ‘브랜드’로서 기능하지 않는다. 생활 의 기본이 ‘말(言)‘을 제대로 세우는 것이며, 학문의 기본이 ’개념‘을 제대로 세우는 것이듯 국정의 기 본은 그 ’방향성‘을 명확히 제시하는 것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둘째로 국정아젠더로 설정한 이후에는 관계된 모든 정책들과 예산들을 통합·조율하는 것, 그리고 사 회적경제를 한국의 복지전달체계 속에 적극적으로 활용해 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가령 2011년 2월 발간된 <정부 재정지원 일자리 사업 현황자료>에는 총 22개의 중앙부처 및 소속 청에서 시행중인 169개의 사업이 수록되어 있었다. 적어도 이 중 90개는 사회적기업, 사회적협동조합의 방식으로 운 영될 수 있다. 아직 안 되는 이유는 단지 정책의지가 확고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적경제와 관련된 부처도 사방에 분산되어 있다. 사회적기업은 고용부, 마을기업은 행안부, 자활은 복지부, 협동조합은 기재부 등과 같이 모두 조각조각 나 있다. 그렇다고 청와대가 조율하는 것 같지도 않다. 지난 정부에서 이 분야의 정책을 담당했던 청와대 서민정책비서관실은 되레 없어졌다. 횡적 정책조율이 가능한 포 스트인 국정기획비서관 혹은 국정과제비서관이 조정할 수도 있겠으나 아직까지 아무런 발표가 없다.
셋째로 사회적경제의 성장생태계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바로 사회적경제 활동가(기업 가)의 양성체계이다. 사회적경제를 만약 “한 사회 속에 존재하는 스스로 잘 살고자 하는 노력들과 선 한 의지들을 경제적으로 결합시킨 것”이라고 정의한다면 그것은 상당한 능력을 가진 사회적경제 활 동가(기업가)가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즉 ‘활동가’의 능력만이 아니라 ‘기업가’로서의 자질도 필 요한 것이다. 협동조합이 잘 발달한 트렌티노지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문맹률이 이탈리아에서 거의 최고수준의 후진지역이었다. 사회적기업이 발달한 스코틀랜드도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무 대가 될 만큼 황량한 지역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소득 면에서도 그리고 생활의 질 면에서도 상당히 좋은 지역으로 뽑힌다. 결국 ‘사람’인 것이다. 어려움을 딛고 일어서는 사람들의 노력을 조직할 수 있 는 선구적인 운동가들의 집단, 그리고 그 집단을 세대 간에 계승시켜 가는 교육이 중요한 이유이다.  2013년 한국은 복지가 화두이다. 신정부도 복지를 강조한다. 그러나 기존의 시장과 정부의 한계를 인정한다면 복지와 사회적경제의 영역은 필연적으로 연결되어야만 한다.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그 ‘ 필요성’을 인식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국정 아젠더로서 제대로 세우는 것이다. 관련부처와 기능 을 통합하고 정부복지서비스 전달체계 속에 사화적경제영역을 적극 편입시키는 것도 필요하다. 이러 한 기반 위에 현장에서 협동조합과 사회적기업의 가능성을 확대시켜 갈 새로운 활동가를 양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비전, 실행체계의 정비, 정부예산의 사회적경제로의 이양, 이것을 담당할 활동가의 양 성, 이 모든 것이 신정부의 출범과 함께 대대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나,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 시급성 을 인식하고 있지 못한 듯해 안타깝다. 
 

 

글 김종걸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자료제공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  <제66호  2013.10. p.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