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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들가게2] 17년 째 한결 같은, 동보 슈퍼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9-02-13
첨부파일 나들가게21.jpg 조회수 2,318

나들가게 이야기2

 

17년 째 한결 같은, 동보 슈퍼

글.이지은
인터뷰이.동보슈퍼



 

 


. 이지은

몰강스러운 날씨다. 며칠 째 계속되는 폭염으로 가만히 서있어도 땀이 줄줄 흐른다. 동보슈퍼 정휘동 대표가 손수 빨간 파라솔을 펼친 다음 차가운 캔 홍차를 가지고 온다. 같이 가게를 운영하는 그의 부인 임미숙 대표는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환한 웃음으로 자리에 앉는다. "요새 이름 물어보면서 대출 받으라는 전화가 어찌나 오던지, 어제도 인터뷰 요청 전화 받고 나 아니라고 했잖아요. 대출 광고 전화인 줄 알고요.(웃음)"

 

동보슈퍼는 원주 단계동 동보렉스 3차 아파트 입구 코너에 자리 잡은 지 올해로 17년에 접어든다. 가게를 시작하기 전 정휘동 대표는 K자동차 회사에서 20년 동안 일했고 임미숙 대표는 9년 정도 작은 문방구를 운영했다. "원래 이 슈퍼 전 주인이 애들 친구 엄마였어요. 어느 날 이거 한 번 해보지 않겠냐고 물어보더라고요. 그때 아저씨(남편)IMF 때문에 직장에서 막 나온 상태였고 나도 문방구로는 도저히 미래가 보이지 않아서 하겠다고 했어요. 그때가 큰 딸이 고1이었어요."

 

손님에게 미안해서 일찍 열기 시작한 가게

그 사이 고등학생이던 큰 딸은 어느새 훌쩍 자라 미국에서 회사를 다니고 있다. "다음 달에 딸 결혼식 때문에 미국에 가요." 미국인 남편을 만난 딸은 얼마 전 한국에서도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그 날 처음으로 부부는 가게 문을 닫았다. "결혼식 당일만 딱 한 번 가게 문을 닫았어요." 가게를 운영하면서 부부는 흔한 여행 한 번 제대로 가본 적 없다. 최근 딸 덕분에 45일 일본 여행을 가게 되었지만 가게 문을 닫지 않았다. "믿는 친구한테 45일 가게를 맡겼어요." 계속해서 임미숙 대표가 말한다. "가게 문 닫았을 때 동네에 사는 어린 학생이 엄마한테 가서 그랬대요. 원래 우리 가게가 밤 12시까지 환하게 켜져 있는데 불이 꺼져있으니깐 집 가는 길이 무섭다고 데리러 나오라고요." 어느 새 가게는 동네 사람들의 생필품 공급 뿐만 아니라 안전까지 책임지고 있다. "아저씨(남편)는 참 바지런해요. 항상 아침 640분이면 가게 문을 열거든요. 이제 나이도 들었으니 730분에 가게 문을 열라고 했더니 안 된대요. 아침 7시 전에 일하러 나가는 분들이 담배 하나 사러 들리는데 그 분들에게 미안하다고요. 그래서 이번에 일본 여행 가서도 저이는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못 버리고 굳이 숙소 근처 약수터까지 가서 물을 떠 오더라고요.(웃음)"

 

나들가게로 변신 후 생긴 새 간판과 포스기

볕이 점점 더 따가워져 결국 슈퍼 안으로 자리를 옮긴다. 혹여 장사를 방해할까 걱정하는데 오히려 부부는 좋은 자리를 내어준다. 동부 슈퍼만의 자랑거리를 묻자 과일이요. 청과물 시장에서 좋은 것만 떼서 가져오거든요. 자주 먹는 사람들이 그러더라고요. 우리 가게 과일이 맛있대요." 나들가게 장점을 말한다. "편의점보다 가격이 더 싸요. 거긴 하루 종일 운영해야 하니깐 전기세부터 인건비까지 여러 가지가 많이 들거든요. 우리(나들가게)는 그렇지 않아요." 계산대에서 막 손님에게 잔돈을 거슬러준 정휘동 대표가 부인을 보며 묻는다. "나들가게가 된 지 아마 10년은 됐지?" 임미숙 대표가 그 정도 쯤 됐다고 답한다. "나들가게가 되면서 새 간판을 달았어요. 원래 간판은 버리기 아까워서 다른 쪽으로 옮겼고요. 포스기도 생겼어요. 이거 있기 전에는 작은 계산기 다했어요. 그리고 물건 진열도 보기 좋게 다 바꿨어요. 나들가게 하기 전에는 바닥부터 컵라면 박스를 쌓아놨는데 나중에 도와주시는 분이 오시더니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정부와 원주시에서 어느 정도 지원을 해줬기 때문에 이렇게 가게가 보기 좋게 바뀌었어요." 현재 정휘동 대표는 '원주 나들가게 연합 상인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작년에 원주가 나들가게 선도화 지역으로 선정되서 3년 지원을 받고 있어요. 이제 한 1년 정도 남았네요." 선도화 지역 지원 기간이 끝난 후 보다 체계적인 나들가게 운영을 위해 그는 현재 '원주 나들가게 협동 조합'을 다른 상인들과 함께 준비중이다.

 

 

오늘보다 좋은 내일

인터뷰 내내 부부는 여유와 웃음으로 가득하다. 슈퍼를 드나드는 이웃과도 계속 인사하느냐 인터뷰가 잠시 중단되기도 한다. 어떤 할머니는 옥수수를 택배로 부치겠다며 계산대 앞에서 자연스럽게 주소를 말하고 정휘동 대표는 차분하게 주소를 받아 적는다. 가게에서 택배까지 제공 하냐는 물음에 그렇다고 웃는다. 동네 주민에게 동보 슈퍼가 가진 의미는 아무래도 소비만 하는 슈퍼 이상의 의미다. 택배를 부친 할머니가 돌아가고 임미숙 대표가 계산대를 정돈하며 말한다. “오늘보다 내일이 나으면 된다는 말을 품고 살아요. 동보슈퍼도 그렇게 흘러갈 거라고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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