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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에서 보낸 편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0-10-21
첨부파일 축제.jpg 조회수 1,245

대동 세상을 꿈꾸며
대학의 꽃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축제’일 겁니다. 대학의 축제를 대동제(大同祭)라 부르기도 하는데, 고 신영복 선생님은 대동제에 대해 『나의 동양고전독법 강의』(신영복, 돌베개, 2004)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의난疑難이 있을 경우 임금은 먼저 자기 자신에게 묻고, 그 다음 조정 대신에게 묻고 그 다음 백성들(庶人)에게 묻는다 하였습니다. 그래도 의난이 풀리지 않고 판단할 수 없는 경우에 비로소 복서卜筮에 묻는다, 즉 점을 친다고 하였습니다(汝則有大疑 謀及乃心 謀及卿士 謀及庶人 謀及卜筮). 임금 자신을 비롯하여 조정 대신, 백성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의 지혜를 다한 다음에 최후로 점을 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점괘와 백성들의 의견과 조정 대신 그리고 임금의 뜻이 일치하는 경우를 대동大同이라 한다고 하였습니다(汝則從 龜從筮從 卿士從 庶民從 是之謂大同). 대학의 축제인 대동제大同祭가 바로 여기서 연유하는 것이지요. 하나 되자는 것이 대동제의 목적이지요.”

신영복 선생님이 이 글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물론 축제나 대동제는 아닙니다. 주역과 점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대동제가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그런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인해 대학 교정은 쓸쓸하기만 합니다. 젊음으로 넘쳐야 할 캠퍼스는 적막강산입니다. 대학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온 나라 축제가 멈췄습니다. 일정이 취소되거나 무기한 연기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온라인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축제가 대안으로 떠올랐습니다. 모임도, 행사도, 축제도, 수업도 이제는 가상의 공간에서 진행됩니다. 등장하는 그 사람이 실제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대학도 이제 캠퍼스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전 세계 주요도시가 캠퍼스이자 기숙사입니다.

개인의 가장 아름다움 축제라고 할 수 있는 결혼식도, 누군가를 떠나보내야 하는 장례식도 눈치를 보면서 초대장을 보내고, 부고를 알려야 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지면을 할애 받은 식자들은 누구랄 것 없이 ‘역사상 경험해 보지 못한 세상’을 살고 있다며 인류는 이 위험으로부터 지혜롭게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지금 우리의 정체성을 조금씩 온라인이라는 가상의 세계에 빼앗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인류가 만들고 창조해 낸 것이라며 뿌듯해 할 수도 있지만, 지금껏 우리가 누려왔던 정서적인 축제들을 밀어내고, 사이버 공간에 내 준다는 것이 조금 성급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가상의 공간 또한 모든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대동이 안 되는 것이겠지요.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축제가,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축제가 될 수 있도록 지금은 기다림의 시간도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모두가 하나 되는 대동 세상을 기다리며 말입니다. 다시 축제가 시작될 날을 기다려 봅니다.

편집장 원상호



여는 글
정기구독하는 문학 잡지에서 매달 전국에서 열리는 축제에 직접 참여하고, 답사 기록을 연재하는 에세이가 있습니다. 가장 최신호에서는 전라북도 완주에서 열린 (이름도 길고 어떤 축제인지조차 한 번에 이해하기 어려운) ‘완주와일드푸드축제’에 관한 글이 실렸습니다. 이 코너의 글을 읽을 때마다 ‘전국에 정말 별별 축제가 다 있구나’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듭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그러한 '별별 축제'마저 열리지 않거나 온라인으로 무대를 바꿔 열리고 있습니다. 수 백 년 동안 이어진 '강릉 단오제'조차 온라인에서 열렸습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아직은 먼 미래라 여겼던 일들이 이렇듯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펼쳐집니다.
이번 호의 주제는 ‘축제’입니다. 원주에서 열린 몇 가지 축제와 온라인 축제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독립영화를 상영하는 ‘고씨네’와 디자인과 개발을 함께 하는 ‘풀그림창작소’도 소개합니다. 지난 9월 9일 원주 혁신도시에 개장한 ‘원주 행복장터’ 개장 소식도 전합니다. 일본 오사카 에스코프와의 교류와 함께 오랜 연구 끝에 세상에 나온 전통주 ‘12월의 양조장’ 시판 소식도 담았습니다.

태풍이 지나가고 서늘한 바람과 마른 햇살이 버무려진 쾌적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바깥에서 사람들을 만나 맛있는 음식을 나누며 얘기하기 참 좋은 날이지만, 올해는 참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도 이 시기가 반드시 지나가리라 믿습니다. 어떤 해보다도 더 넉넉하고 따스한 가을을 만끽하시길 바랍니다. 

 

글 이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