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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1]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2-08-10
첨부파일 새장을_나온_새__글로_기록된_삶.jpg 조회수 581

새장을 나온 새, 글로 기록된 삶 




삼호정시사(三湖亭詩社)는 19세기 중반 결성된 조선 최초의 여성 문예동인 모임이다. 삼호정시단 혹은 삼호정시회라고도 한다. 삼호정은 원주 출신의 김금원이 1847년부터 남편 김덕희와 함께 살던 별장으로, 이곳에서 금원은 당대의 빼어난 문인이었던 운초 김부용, 박죽서, 경산, 경춘 등과 함께 글 을 짓고 나눴다. 현재 삼호정은 모습이 남아있지 않으며 그 자리에 용산성당의 성직자 묘역이 들어 선 것으로 추정된다. 

 

삼호정시사는 모두 기녀 또는 서녀 출신의 양반 댁 소실이었다. 조선 중기에 시사(詩社)는 사대부들 의 시 창작 모임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는데, 조선 후기 들어서부터는 중인의 시사 결성도 크게 늘 어났다. 사대부 정실과 비교해 소실은 상대적으로 언행의 제약이 적었기에, 삼호정시사와 같은 모임 이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1) 엇비슷한 처지에 놓여있던 이들은 신분제 봉건사회에서 한계에 가로막 힐 수밖에 없었던 서로의 재능을 치하하고 우정을 나누었다. 

우리나라 여성 문학사에 ‘최초’라는 훈장을 달고 명예롭게 기록된 삼호정시사의 동인 중에는 금원과 금원의 동생인 경춘 그리고 박죽서까지 원주 사람이 셋이나 된다. 이 가운데 김금원과 박죽서의 생애 와 그들이 남긴 글의 일부를 간략하게나마 지면에 소개한다.  


갇혔던 새가 하늘을 날다 - 김금원 (1817~1853)  

원주시민이라면 김금원을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다. 강원감영 후원 얘기다. 그곳에는 의관을 단 정히 차려입고 한 손엔 서책을 든 금원의 동상이 서 있다. 먼 곳을 바라보는 금원의 표정이 어쩐지 의연하게 보이는 데는 까닭이 있다. 그의 나이 14살이던 1830년에 어렵사리 부모의 허락을 얻어 금 강산 유람을 떠났던 당시를 재현했기 때문이다.  

어렵게 받은 허락이라 마음이 후련하기가 마치 새장에 갇혀 있던 새가 새장을 나와 끝없는 푸른 하 늘을 날아오르는 기분이고 좋은 말이 굴레와 안장을 벗은 채 천 리를 달리는 기분이다.2)

「호동서락기」 중에서


제천 의림지를 시작으로 단양팔경, 금강산에 이어 설악산과 한양까지 두루 세상을 만나본 금원은 다시 고향 원주로 돌아와 강원감영의 관기가 된다. 이후 추사 김정희의 육촌인 김덕희의 소실이 된 금원은 벗들과 삼호정시사를 결성한다. 그의 나이 서른 살 무렵인 1850년(철종1)에 펴낸 「호동서 락기」에는 20년 전 떠났던 여행의 기록과 더불어 시사모임에서 지은 시가 수록되어있다. 이 책에 서 금원은 ‘한미한 집안’ 출생 여성이라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회한을 밝히기도 했다.  

여자로 태어나 규방 깊숙이 들어앉아 여자의 길을 지키는 것이 옳은 일인지, 한미한 집안에서 태어 났다고 세상에 이름을 날릴 것일랑 단념을 하고 분수대로 사는 것이 옳은 것인가?3)
「호동서락기」 중에서


어린 금원은 남장을 하고 여행을 떠났다. 그러나 여행을 마칠 무렵이 되자 ‘홀연히 처연함을 깨닫’ 고 여성의 복장으로 되돌아온다. 어릴 때부터 눈에 띄게 영리했던 금원에게 부모는 가사를 가르치 는 대신 서책을 읽도록 했다. 당시 학문은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서당과 같은 기초적인 교육기관 조차 여성에겐 허락되지 않았다. 금원의 표현에 따르면 ‘어려서 잔병이 많아 부모가 이것을 불쌍히 여겨’ 글공부를 시켰다곤 하지만 그가 총명하지 않았더라면 이 또한 어려웠을 것이다. 시문을 짓고 서책을 즐겨 읽던 금원에게 신분에 따라 정해진 운명을 살아가야하는 세상은 벗어날 수 없는 새장 처럼 느껴졌음에 분명하다. 여정 내 입고 다닌 남자 옷을 벗고 다시 치마저고리 차림으로 갈아입는 동안 금원이 어떤 마음이었을지, 다소나마 짐작된다.  


百花春已晩 봄 지나 뭇 꽃들 떨어졌는데

只有海棠紅 다만 해당화만 붉네.

海棠若又盡 해당마저 또 지고 나면,

春事空復空 봄의 적막만 허전히 남으리.4)

「호동서락기」 중에서


만난 듯 이별한 후 남겨진 시 한 수 - 박죽서 (1817? ~ 1851?) 

박죽서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는 것이 많지 않다. 사후에 남편의 친척인 서돈보가 죽서의 시를 엮어 만든 「죽서시집(죽서시집)」이 그나마 그의 짧은 생을 후대까지 전할 뿐이다. 죽서시집에 수록된 시에 따르면 죽서는 금원과 같은 원주 출생으로 전해진다. 금원이 쓴 죽서시집의 발문을 읽으면 이 들이 친 자매와 다름없이 나누었을 깊은 우애를 상상할 수 있다.   
 

(전략) ······ 죽서는 나보다 몇 살 어린데 어렸을 때부터 같은 고향에서 자랐고 또한 함께 서울로 시집을 와서 오가며 시를 주고받은 것이 많다. 그런데 갑자기 옛 자취가 되어버렸다. 모를 일이다. 후생에 나와 죽서가 함께 남자가 되어 혹은 형제로 혹은 친구로서 허로 시를 창화하면서 책상을 함 께 할지 어떨지를. 아! 신해년 황양월 중한에 금원 씀
 

또 같은 발문에서 금원은 죽서를 일컬어 ‘반짝이는 눈과 붉은 뺨을 가진 재주 있고 지혜로운 명규( 名閨)이며, 동시에 은거자의 풍모를 갖추었다고도 묘사했다. 금원과 마찬가지로 죽서는 어린 시절 부터 무척이나 영특했다. 아버지로부터 글공부를 배웠는데, 알게 된 바를 좀처럼 잊는 법이 없었고 열 살 때엔 이미 시작에 능했다고 한다. 
 

臆外彼啼鳥 창 밖에 우는 저 새는

何山宿便來 어느 산에서 자고 왔는고 

應識山中事 아마도 산 속의 일 알겠지

杜鵑開未開 두견화는 피었는지5)
「죽서시집」 중에서 <십세작(十世作)>




죽서의 시에서는 다양한 감정이 느껴진다. 장원급제한 아우를 축하하는 시에서는 그리움과 기쁨 이, 고인(古人)들의 지혜를 배우고 따르겠다는 결심을 적은 시에서는 선비의 기개가, 남편을 향한
가슴앓이를 표현한 시에서는 애달픈 정서가 담겨있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가족을 떠나 낯선 타 향에서 누군가의 소실로 살다가 단명한 죽서의 애달픈 삶은 이제 그가 남긴 시로 남아 우리의 마 음을 울린다. 


乍逢旋別後 만난 듯 이별한 후에  

脈脈只駑魂 계속해서 놀라기만 하는 이 마음

歸冊音雉定 돌아가는 기러기 소리에 마음 산란한데  

寒燈燼更緊 차가운 등불 다 탔다가 또 다시 타오릅니다

莫言多病苦 병 많아 괴롭다고 말하지 마오 

却災滿心煩 도리어 마음 가득 번뇌 한스럽습니다 

月白梅香夜 달 밝고 매화 향기 날리는 밤

那堪獨掩 홀로 문 닫고 있는 것 어찌 견디겠습니까6)

「죽서시집」 중에서 <그대에게 (寄呈)>


[참고문헌]

<삼호정시사(三湖亭詩社) 구성원들의 자의식 고찰 (2019, 한국어문교육 28호, 장산, 201-225)> 

‘기녀 서녀 출신들 최초 여성문예동아리 ‘삼호정시사’ 만들다 (2013.07.05일자, 이진숙, 중앙선데이)’
https://www. joongang.co.kr/article/12000180

<문화원형백과 유산기 : 호동서락기 - 금원당 김씨 (2005, 한국콘텐츠진흥원)>
<역사 속 원주의 여성인물 (2012, 원주문화원)> 

‘임 생각 떨치려 해도 생각은 절로 나고 (2019. 12.17자, 장희구, 광주매일신문)’
http://www.kjdaily.com/read.php3?aid=1576578514494223206


1) <삼호정시사(三湖亭詩社) 구성원들의 자의식 고찰 (2019, 한국어문교육 28호, 장산, 201-225)>
2) <역사 속 원주의 여성인물 (2012, 원주문화원) 10페이지
3) <역사 속 원주의 여성인물 (2012, 원주문화원) 125페이지 
4) <문화원형백과 유산기 : 호동서락기- 금원당김씨 (2005, 한국콘텐츠진흥원)>
5) <역사 속 원주의 여성인물 (2012, 원주문화원) 130페이지 
6)  <역사 속 원주의 여성인물 (2012, 원주문화원) 152페이지


 글 황진영 지역문화콘텐츠협동조합 스토리한마당